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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IuPecOujsXI
본문 바울의 재판(1): 벨릭스 앞에서 (행 24:1-2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9-02

사도행전 24:1-27 바울의 재판 (1) : 벨릭스 앞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 로마사람인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살리려고 한 내용을 지난주일 생각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밤중에 군사 470명을 동원해 유대인 모르게 가이사랴로 압송했습니다.

 

바울이 압송된 가이사랴는 헤롯대왕(B. C 37-4)에 의해서 건설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입니다. 헤롯은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가이사의 성”이란 뜻입니다.

가이사랴 안에 헤롯은 자신의 궁도 건설했는데, 그 헤롯 궁이 후에 로마 총독부와 군대가 주둔하는 주둔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바울이 압송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23장 35절 마지막 말씀에 나오는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는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세 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 벨릭스 총독에게 / 24장

두 번째, 벨릭스의 후임, 베스도 총독에게 / 25장

세 번째, 아그립바 왕에게 / 26장

오늘을 포함해서 3주 동안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재판을 받는 이야기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재판 기록에 대해 살펴보십시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 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먼저 바울이 받게 되는 재판정에 있었던 사람들을 살펴보십시다.

① 고소인 – 대제사장 아나니아, 장로들

장로는 넘어가고, 대제사장 아나니아만 생각해 보십시다.

대제사장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유대 민족의 대표자입니다.

대제사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어야 할 그가, 헤롯이 만든 도시, 로마 군대가 머물러 있는 가이사랴에 왔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 못된 것입니다.

왜 왔을까요? 재판을 통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온 것입니다.

못된 사람인 것입니다.

 

② 변호사 – 더둘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변호해 줄 더둘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가지요. 오늘날로 치면 더둘로는 국제변호사입니다. 당시 유대법, 로마법에 정통했고, 최소 2개 국어는 능통했습니다. 더둘로는 명석한 머리와 폭넓은 학식, 그리고 상당히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더둘로가 약자 편에 서서 변호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에 붙어있는 변호사라는 것입니다. 그의 입에 나오는 말 전부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 재판장 – 총독 벨릭스(본명 : 안토니우스 벨릭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예정신으로 왕의 특권을 행사한 사람”

원래 벨릭스는 노예였습니다. 그에게는 팔라스라고 하는 형이 있었는데, 이 형이 로마 황제 글라디우스와 친했다고 합니다. 당시 글라디우스 황제는 굉장히 엽기적인 짓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상한 짓을 충족시킨 사람이 벨릭스의 형 팔라스였습니다.

그렇게 아부해서 글라디우스 마음에 든 팔라스는 동생 벨릭스와 함께 자유인이 됩니다. <노예에서 →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형제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별의 별 짓을 다한 결과 벨릭스는 <로마에서 다스리기 가장 골치 아픈 유대 총독>이 된 것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노예로서 로마의 지방장관이 된 사람이 벨릭스였습니다.

그는 총독이 되었지만 그의 몸에는 <노예의 성분, 노예의 문학, 노예의 언어, 노예의 행위>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벨릭스의 가정도 복잡했습니다. 그는 세 여인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여자 <드루실라(24절)>는 세 번째 부인이었는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맏딸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서 헤롯 왕의 맏딸과 결혼한 것입니다.

 

벨릭스의 통치 방법은 – 무자비했습니다.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는 친구도 충신도 없었습니다.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폭동을 진압할 때는, 주동자는 물론이요 주변사람까지 다 죽였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 요나단도 살해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전에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2년 있었고,

유대총독으로 부임한지 5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2년 더 있어서 총 9년 동안 유대 지역의 총독으로 재직했습니다.

결국 벨릭스가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후에 로마로 소환되었고, 사형될 뻔했으나 형 <팔라스>의 도움을 입어서 죽음만은 간신히 면했다고 전해집니다.

 

자, 바울이 재판을 받게 되는 재판정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재판장 : 총독 벨릭스

변호인 : 더둘로

고소인 : 대제사장 아나니아 .......

이들이 있는 곳에서 바른 재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바른 재판은 어림없습니다. 마치 술에 만취한 사람이 운전을 하면 그 차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마련이듯, 여기에서 바른 재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과는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재판의 내용은 살펴보십시다.>

2-4절은 <더둘로가 벨릭스에게 아첨의 말입니다.>

벨릭스 각하여 하면서 당신 때문에 나라가 태평하고,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첨의 말에는 저의가 깔려있습니다.

 

5-6절은 바울을 세 가지 죄목으로 고소합니다. 중요한 부분이니 읽어보십시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바울을 고소한 세 가지 죄>

① 유대인을 소요하게 하는 자

②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③ 성전을 더럽힌 자

그리고 그 앞에 한 마디로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고 한 것입니다.

역시 당대 최고의 변호사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바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세 가지 죄에서 <총독 벨릭스가 신경 쓰이는 항목은 ① 유대인을 소요하게 하는 자> 이겠지요. 그는 정치적으로 소요가 일어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니 그것을 첫 번째 항목으로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죄목은 ③ 성전을 더럽힌 자>이겠지요.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저에 눈에 가장 들어온 말씀은?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5절)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염병은 “페스트”를 뜻합니다. <흑사병>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흑사병은 역사상 수억에 달하는 인명을 앗아 갔으며,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서운 병 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더러 “전염병”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굉장히 무섭다> 혹은 <전염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더둘로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울이 <전염병 같은 사람>이라고 좋지 않게 말했지만, 복음의 관점,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그 말을 생각해 보면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습니다.

보십시오.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선교사로 파송 받아 마가 요한과 함께 한 1차 선교여행

실라, 디모데, 누가와 함께 한 2차 선교여행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한 3차 선교여행을 우리는 이미 다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바울의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놀랍게 확장된 것입니다.

마치 ‘페스트’가 순식간에 전염되어 사람들을 죽이듯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아시아와 유럽을 순식간에 복음화 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니 더둘로의 이 표현은 어쩌면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저는 이 복음의 전염병이 우리와 우리교회로 통해서 더 빨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아직 이 땅에는 80% 이상의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집안에서도 복음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로 통해 복음이 그들에게 전염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교회가 건축한 해외 35개 예배당을 통해 복음이 각 나라에 전염되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고소 내용을 3가지 생각했는데 말씀을 보니 6절 말씀 끝에 1)(6하반 – 8상반 없음)이라고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본에는 이런 내용의 말씀이 있다고 난하 주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보시면 말씀이 더 쉽게 연결이 됩니다.

1) 어떤 사본에는 24:6하반절 – 8상반절에 다음 내용이 더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대로 재판하려고 했으나 7 천부장 루시아가 와서 그를 우리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나이다 8 그리고는 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각하께 가라고 명하였나이다.”

 

그럼 <피고 바울은 벨릭스에게 어떤 말씀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10-13절의 내용이 <바울이 변론하는 내용>입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바울의 변론에서는 더둘로처럼 아첨하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안 되었기에,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한 적도 없고, 회당에서 소요를 일으킨 적이 없다면서 벨릭스가 내 놓은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주 성경적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한 것은 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14-16절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항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바울이 인정하는 것 4가지> 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나는 내 조상의 하나님을 믿는다.”(14절)

② “나는 율법과 선지자의 글,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을 믿는다.”(14절)

③ “나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15절)

이상 세 가지는 자신의 신앙관을 말합니다. 이런 신앙이 있기에 4번째로 갑니다.

④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에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16절)

 

이렇게 바울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부분은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판결을 내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이 3가지의 죄를 지었다고 고소했습니다.

바울은 무죄를 선언했고, 양심이 그를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재판 결과를 보십시다.

22-23절입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재판 결과는 – 연기 / 재판 용어로 말하면 <선고 유예>였습니다.

벨릭스는 왜 선고유예를 내렸을까요?

여러분? 벨릭스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노예에서 총독까지 된 인물입니다.

정치 9단, 10단 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어떤 판결을 내린다고 해 보십시오.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 편을 들면 – 유대 지도자들이 난리를 칠 것이고,

유대 지도자들의 편을 들면 – 로마 시민권자 바울과 로마법에 저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특한 머리를 가진 그는 <선고 유예>를 내린 것입니다. 그것도 2년이란 기간을 말합니다.

 

<선고유예>가 나쁜 결과 같지만, 사실 바울에게는 좋은 결과였습니다.

만약 사도바울에게 무죄가 선언되어 석방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을 죽이려는 암살단, 산헤드린 공회, 대제사장은 분명 바울을 죽였을 것입니다. 석방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울에게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앞으로 2년 감옥에 있게 되었지만 23절 말씀대로 <자유>가 있는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이사랴의 2년 감옥생활이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로 쉴 시간 없이 사역하다가, 이제 하나님의 배려로 2년을 쉬게 되었습니다.

군인이 지켜주지요. 식사 제공되지요. 복음을 전할 수 있지요. 책도 쓰지 않아도 되지요. 목회자에게 7년마다 주어지는 안식년을 바울에게는 2년 곱빼기로 준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내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아도, 때로 감옥 같은 환경일지라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삶이 힘드십니까? 경제가 힘듭니까? 건강이 힘드십니까? 원망하지만 마시고, 이 순간이 하나님이 나를 쉬게 하시는구나 생각하시고 오히려 영적인 충전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마지막 24-27절을 보십시다. 감옥에서 바울이 한 일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의 믿는 도를 듣거늘 ○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 두 가지를 얻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24-25를 보세요.

문제는 충분히 복음을 영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바울에게 돈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총독이 죄수에게 돈을 받는 것, 당시에 관례였다고 해도 지금 벨릭스가 바울에게 돈을 받고 싶어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17절 말씀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이 말을 듣는 순간, 바울은 많은 돈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줄 알고, 돈을 받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결과는 벨릭스는 복음도, 돈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에 대해 질문한 부자청년(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이 생각났습니다. 물질과, 영생 양자에서 갈등한 사람 .... 결국 부자청년은 영생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대부분 성도들도 <물질 + 예수>를 둘 다 갖기를 원합니다. 순서로 말하면 물질을 먼저 가지고, 예수는 죽기 하루 전에 가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성도여러분,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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