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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ghpRLqu8Zs4
본문 바울의 재판 (2) : 베스도 앞에서 (행 25:1-2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9-09

사도행전 25:1-27 바울의 재판 (2) : 베스도 앞에서

 

바울은 2년 동안이나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총독 벨릭스 때문이었습니다. 벨릭스는 자신의 자리 때문에 바울을 2년 동안 방치한 것입니다.

 

정치 구단 벨릭스는 결국 로마로 송환되었고, 로마는 <베스도 총독>을 벨릭스 후임으로 보냅니다. 베스도 총독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베스도는 정직하고 의롭고 아주 곧은 사람”이라는 정도뿐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2년 동안 총독의 자라에 있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지 3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첫 방문을 갔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1-3절을 보십시다.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이 말씀에서, 열정적으로 총독 직분을 감당하려는 베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울러 바울이 죽이려고 했던 세력들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첫 방문을 나온 베스도에게 유대지도자들이 첫 번째로 부탁한 것이<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재판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길에서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1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계속 나오는 이야기,

<대제사장, 유대 지도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왜 그들은 그토록 바울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바울의 가슴에 가득 차 있고, 입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십자가와 부활>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이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회 의원, 유대지도자, 왕, 총독, 유대인 등 모두가 하나 되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주신 메시야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바울이 전하는 이 복음의 핵심 때문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 분을 죽인 장본인이 <자신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야 말로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없애야 했던 것입니다.

시간이 2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은 <베스도>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처음으로 부탁받은 것이었기에 가급적 유대인의 의견을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유대인들에게 얼마 있지 않으면 가이사랴로 내려가니, 당신들도 같이 내려가서 바울을 고발하면 재판을 해 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베스도는 그들에게 말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8일 혹은 10일 정도 머물다 가이사랴로 내려갔고, 내려간 다음날 <바울을 재판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6-12절 말씀은 <베스도 앞에서 바울이 재판 받는 내용입니다.>

재판장–총독 베스도

고소인–유대지도자

피 고–사도바울

 

유대인들은 –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고발했으나 죽일 증거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 무죄하다고 변론합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은 베스도는 그 상황에서 바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9절 보세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바울에게, ‘너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 받을래’ 라고 물어본 것입니다.

 

바울은 2년 전이나, 지금 상황이나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바울은 베스도총독에게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11절 하반절)하며, 로마시민권자로 당당하게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스도는 <재판장에 있었던 배심원들과 상의한 후에>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12절)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베스도 앞에서의 재판은 <로마황제께 상소하기로 한다.>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환상 중에 말씀하신 대로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총독 베스도였습니다.

로마 시민을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려면, 그만한 죄가 있어야 합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이 00 죄를 지었기에, 황제께 상소하오니, 황제께서 재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상소문을 써 보내야 하는데,

바울을 로마황제께 상소한다고는 결정했는데, 바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죄명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면, 황제를 농락한 죄로 화살이 자신에게 올 것이니 베스도는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에, 귀한 손님이 총독부를 방문했습니다.

13절을 보세요.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이 방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치 체제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중 통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롯 왕가에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하나 선출되었고, 또 그 사람을 감독하는 동시에 로마 황제의 명령을 직접 받아서 그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이 있었습니다.

 

이 체제에서 시행되던 관례 중 하나가 총독이 새로 부임하면 그 지역을 관할하는 헤롯 가의 왕이 인사를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관례에 따라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총독의 관저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여러 날 후에 <아그립바 왕>에게 – 정치적인 조언을 하나 구합니다. 바울 문제였습니다.

‘바울이란 자를 유대인들이 고소해서, 조사해 본 결과, 정치적인 문제는 없고, 그저 <종교문제요, 예수가 죽었다가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인데, 바울이 로마황제께 상소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어줘서 황제께 상소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바울에게 붙일 <죄 명>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14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어집니다. 내용은 어렵지 않으니 여러분이 본문을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두 곳에 초점을 맞추어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헤롯 왕가> 에 대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표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표는 세로로 만들어 주세요)

【 헤롯대왕(주전 37-4년) → 헤롯 안티파스(주전 4년-주후 39년)

→ 헤롯 아그립바(주후 41-44년) → 헤롯 아그립바 2세(주후 50-70년)】

 

① 헤롯 대왕 – 헤롯 대왕하면 여러분은 뭐가 생각나십니까? 헤롯 대왕하면 동방박사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고, 경배하고 돌아갈 때 천사들의 지시를 받아 헤롯 대왕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갑니다. 뒤늦게 동방박사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에 있는 2세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인물입니다.

- 이 사실을 기본으로 깔고, 헤롯 가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헤롯대왕은 에돔 자손(이두매 족속)의 후예 중 가장 뛰어난 인물입니다.

여기서 잠깐 <에돔 자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에돔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손자, 이삭의 아들인 <애서>입니다.

애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탐욕과 타협하여 장자의 명분과 조상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장자권, 축복권>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붉은 죽(팥죽) 한 그릇 때문에 말입니다. 그 후예 중에 가장 뛰어난 인물 한 사람을 말하면 ‘헤롯 대왕’입니다.

 

② 헤롯 안티파스 – 헤롯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와 베레아 분봉 왕이었습니다.

- 예수님이 사역했을 시대에 왕 - 세례요한을 참수시킨 왕

- 예수님에게 여우라고 책망 받은 왕 - 예수님을 재판 한 왕입니다.

 

③ 헤롯 아그립바 – 헤롯 대왕의 손자

- 유대의 왕이었으며, 헤롯 대왕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 로마가 주전 6세기부터 갖고 있었던 대제사장의 임명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러니 보통 실세가 아니지요.

-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를 가두었습니다.(행 12:1-9)

-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다가 천사가 치니 곧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행 12:2-23), 어디서요?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

 

④ 헤롯 아그립바 2세 – 헤롯대왕의 증손자입니다.

- 사도바울을 직접 만나 복음을 듣게 된 사람입니다.

그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헤롯대왕 → 헤롯 안티파스 → 헤롯 아그립바 → 헤롯 아그립바 2세】

4대에 걸친 헤롯 왕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대 모두,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도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귀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 보면 <백홍준 : 1848∼1893. 최초의 기독교 장로>이란 분이 있습니다. (사진 참조)

백홍준의 아버지는 고향은 평안북도 의주였는데 만주에 장사하러 갔다가 존 로스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존 로스 선교사님은 중국 심양 동관교회에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분이십니다. 우리교회 손경규장로님, 김희오장로님은 지난해 여름 저와 같이 그곳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존 로스 선교사는 백홍준 아버지에게 <성경책 한 권>과 <양초 한 자루>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양초가 없을 때였다고 합니다.

의주로 돌아온 아버지는 초는 자기가 갖고, 책은 아들 백홍준에게 ‘너나 봐라’ 하면서 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이 책, 성경이지요? 그것을 2년 동안 읽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은 가운데 큰 변화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구나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됩니다.

백홍준은 성경을 더 알기 위해서 의주에서 만주로 건너갑니다. 거기에 가서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1,879년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의주에서 은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후에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에서 1887년 장로로 장립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가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힘이요. 이것이 성경의 힘입니다.

 

그런데 헤롯 왕가는 4대에 걸쳐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죽이고, 힘들게 했을까요? 왜 그렇습니까?

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애서가 자신의 허기를 면하게 해 줄 <붉은 죽(팥죽)> 한 그릇에 정신이 팔려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후에 축복권까지 빼앗겨 버린 것과 똑 같은 일을 반복해서 저질렀던 것입니다.

세상 정치, 세상 권력, 세상 명예, 세상 물질이 // 뭐가 대수라고? 4대에 걸쳐서 그렇게 가까이 와 계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는 문은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안에서만 열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3:20 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성도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의 곁에 지금 와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성령님은 지금 우리 예배 공간에 와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옆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그분을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님이 여러분 주변에 계시게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중심에 모셔서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바울의 접견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유형입니다.

23절을 함께 보십시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바울을 만나고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 했던 헤롯 아그립바 2세를 위해서 베스도 총독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① 헤롯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 – 제가 헤롯 왕가 4대를 소개하면서 헤롯 아그립바 2세 소개를 미뤄두었었지요. 그의 아버지는 헤롯 아그립바 1세에는 아들 하나 딸 둘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헤롯 아그립바 2세이고,

딸 둘은 <드루실라: 총독 벨릭스의 아내>와 <버니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니게는 요부(요사하고 망령된 여자)였습니다.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오빠의 부인으로 총독부에 방문한 것입니다. <근친상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23절)라는 말씀대로

왕은 – 왕이 입었던 4색 예복에, 머리에는 금관을 썼을 것입니다.

베니게는 – 화려하게 왕후의 차림을 하고 긴 곳을 입고 나타났을 것입니다.

 

② 총독 베스도 – 통치자로서 로마 사람들의 상징인 주홍색 예복을 입고 나왔을 것입니다.

③ 천부장과 높은 사람들 – 역시 자신의 신분에 맞는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났을 것입니다.

 

반면, 베스도의 명을 받아 접견 장소로 끌려 나온 바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옷은 어떤 것을 입었을까요?

2년 동안 감옥 생활 중인 바울이 얼마나 잘 생겼겠습니까?

입고 있는 죄수복이 얼마나 멋졌겠습니까?

그는 죄수의 의복을 입고, 초췌한 얼굴을 했을 것이고, 손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었을 것입니다.

 

외적인 면은 : 바울을 보려했던 자들의 <큰 위엄, 화려함>과 바울의 <초라함>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셔야 할 것은 <내적인 면>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는 – 겉으로는 화려하고 권력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내면에는 불륜과 죄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총독베스도, 천부장, 높은 사람들 –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자신의 자리를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바울은 어떻습니까? - 겉은 죄수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끌려 나왔지만 그의 내면에는 <하늘의 영광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 가득했습니다.>

 

역사가들은 본문의 바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바울은 초라했다. 죄수의 옷을 입었고, 손에는 쇠사슬이 묶어 있었다. 그는 작은 키요, 대머리요, 눈썹은 짙었고, 코는 구부러졌으며, 다리는 휘어 있었다. 아주 지극히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은혜에 충만한, 신령한 영적 권세가 있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외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까? 아니면 바울처럼 세상의 것은 초라하지만 속은 은혜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한 바울을 닮았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바울의 모습을 닮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세상 적으로 죄수처럼 초라하게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세상의 것도 취할 수 있으면 취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모습이 바울을 닮아서 언제, 어디서나, 예수 믿는 사람답게 자신 있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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