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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C_uBZZxs5nI
본문 사도행전 26:1-23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7-09-16

사도행전 26:1-23  바울의 재판 (3) : 아그립바 앞에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 있으면 어떤 사람이 사명을 알려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울은 다메섹에 들어가 <유다의 집>에서 머물며 3일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나니아>를 보내셔서 바울이 앞으로 해야 할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바울이 받은 사명이 사도행전 9:15-16 에 나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바울이 받은 사명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① 이방인, 임금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도 하는 것

② 고난을 받는 것

그 때가 주후 34년경 정도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재판을 받은 때>를 주후 59-60년 정도로 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사명을 받은 후 25-26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예수님께 사명을 받은 후 25-26년 정도 지났을 때, 예수님께 받은 사명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 고난을 받는 것 – 고린도후서 11:23-28 말씀을 읽어보면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바울이 당한 고난을 당하라고 하다면 믿음을 끝까지 지킬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음으로 힘들다는 것은 바울의 고난에 비하면 새발에 피(조족지혈)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 이방인, 임금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도 하는 것

이것 역시 성취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동안 살펴본 대로 바울의 발자취 뒤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그 중에 아직까지 하나가 성취되지 않았는데 <임금들>에게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 성취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바울이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드디어 왕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예수님께 받은 사명에 충성했고,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만난 지 20년, 30년, 40년 지나면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내가 잘 감당하고 있는지, 몇 퍼센트 정도 완수했는지 점검을 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

첫째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누구나 해야 할 사명이지요. 잘 감당하고 계시는지요?

 

둘째는, 교회를 섬기려고 주신 직분입니다.

저에게는 목사, 여러분들에게는 장로, 집사, 권사, 서리집사의 사명이 있지요.

각 직분마다 <직무>가 있습니다.

 

목사의 직무 –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성례를 거행하고, 교인을 축복하며,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한다.

장로의 직무 - ①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회의 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 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장한다.

② 장로는 교회의 신령상 관계를 살핀다.

③ 장로는 교인들이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교인을 권면한다.

④ 장로는 권면하였으나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당회에 보고한다.

 

집사의 직무 – 집사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제직회의 회원이 되며, 교회를 봉사하고 헌금을 수납하며, 구제에 관한 일을 담당한다.

권사의 직무 – 권사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제직회의 회원이 되며 교역자를 도와 궁핍한 자와 환난 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힘쓴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교회 안에서 직무입니다.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셋째는 내가 받은 은사가 사명입니다. 받은 은사대로 충성하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 <전도와 선교의 사명/ 직분의 사명/ 특별한 은사>라는 사명을 받았는데 거기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받은 사명을 25-26년 정도 지난 지금 돌아보니 대부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임금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바울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그 사명을 놓치고 살았다면 지금부터 힘내어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바울이 <임금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다.

1-3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우리는 지난주일, 헤롯 아그립바 2세가 베스도 총독이 새로 부임했다고 인사 차 가이사랴로 내려왔고,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2세에게 바울을 로마 황제께 상소하도록 했는데 문제는 상소할 만한 죄명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가? 하는 정치적 조언을 구했고, 그런 차에 헤롯 아그립바 2세도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서 접견 자리를 마련 한 것까지 생각했습니다.

 

그 접견 자리에서 드디어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고, 바울이 드디어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 섰을 때 어떤 마음으로 말했을 것 같습니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온 후 오늘까지 다섯 번 변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① 안토니아 요새 계단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행 22:1-22)

②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행 23:1-6)

③ 벨릭스 총독 앞에서 (행 24:10-21)

④ 베스도 총독 앞에서 (행 25:6-12)

⑤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오늘 본문)

 

이때마다 바울은 자신을 변론하고 변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억울하다/ 살려 달라/ 선처해 달라>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변론할 기회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그 영혼을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한 자세는 항상 <당당하게, 논리적로, 명확하게, 침착하게, 지혜롭게, 예의바르게, 마음에 걸림 없이> 전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변론한 사람들의 됨됨이를 한 번 보세요. 유대군중, 산헤드린 공회의원, 벨릭스, 베스도 총독, 지금 변론하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 2세 그 사람 중 한 사람도 전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헤롯 아그립바 2세 같은 경우에는 근친상간을 하고 있는 지저분한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것 쉽지 않는 일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설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전설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손님을 잘 대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번은 사라가 어디가고 없었을 때, 나이 100세는 넘은 노인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먼 곳에서 온 것을 알고 아브라함은 혼자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노인을 모셔다 놓고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잘 마련해 놓았습니다. 한 상을 떡 벌어지게 차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서서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이 귀한 음식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손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하는데, 식사 기도를 드리는 사이에 노인은 벌써 음식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더라도 얻어먹는 주제에 적어도 기도하는 동안에는 참아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이“당장 누구 없느냐?”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종이 “예” 하고 달려옵니다. “이놈을 당장 끌어내라. 이 녀석은 하나님도 모를 뿐더러 식사 기도하는 동안에 성급히 음식을 먹었다. 예의도 없고 체면도 없고 신앙도 없는 이런 나쁜 놈은 대접할 가치가 없다. 냉큼 내쫓아라!”

 

그래서 노인이 종에게 끌려 나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더랍니다.

“아브라함아!” “예” “너 무슨 짓을 하느냐?” “저 놈이 나쁜 놈이라서 내가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예절도 모르는 사람 같지 않는 놈을 내가 왜 대접하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놈아, 나는 저 사람 회개하기를 백 년이나 기다렸어.”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브라함은 황급히 나가 그 분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회개하고 식사를 다시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2세 역시, 이 전설에 나오는 <노인>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답지도 않는 사람, 왕위에 올라 있지만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근친상간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변론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열이 받아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논리적로, 명확하게, 침착하게, 지혜롭게, 예의바르게, 마음에 걸림 없이> 주어진 기회를 이용해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따라 하기는 너무나 먼 사람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이런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변론에서 중요한 점은 <변론을 하면 할수록 더욱 세련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핵심적인 말씀을 합니다.

 

자, 그럼 바울이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한 변론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변론의 내용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4-12절은 바울 자신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 상태를 말합니다.

이미 우리는 사도행전 9장, 22장에서 바울의 회심이야기를 두 번 살펴보았기에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 바울은

① 철저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를 대적하고 핍박한 자였다.

③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자였다.

④ 대제사장에게 보냄을 받아 외국까지 원정 가서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한 자였다

④ 번 내용은 여러분 조금 집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2절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 산헤드린 공회 책임에게, 즉 대제사장들에게 사명을 받아 다메섹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냄을 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입니다. <사도>라는 말입니다. 사도는 <특별한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대제사장들의 사도였을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오는 사명을 대제사장에게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 13-22절에 <바울이 이방 선교를 위해서 택함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의 회심 내용은 이미 알고 있으니, 오늘은 회심의 내용 중에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14절 중 예수님의 말씀 부분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되십니까?

 

이 말은 헬라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는 하나의 속담입니다. 그들의 생활풍속을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제가 설명을 하면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옛날 농경시대에는 소나 말을 길들여서 밭을 갈고, 달구지를 끌었지 않습니까? 멍에를 맨 뒤 뒤에 쟁기를 달거나 달구지를 맵니다. 그런데 아직 길이 덜 들여진 소나 말은 힘든 일은 하기 싫고, 그 일을 시키는 주인을 골탕 먹이려고 가다가 뒷발질을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다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소 보다 영리하니 그런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하나는 송곳 같은 것을 만들어 뒤에다가 놓아두어서 뒷발질을 하면 찔리게 만듭니다. 또 하나는 가시채(가시나무가 엉긴 것을 둥그렇게 만든 것)를 뒷발 뒤편에 묶어 놓습니다. 그러면 주인을 혼내려고 소나 말이 뒷발길을 하는 순간, 송곳에 찔리든지 가시채에 찔리든지, 짐승만 아픈 것입니다. 그렇게 몇 번만 하면 뒷 발로 차면 결국 자신만 힘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 다음 부터는 고분고분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놈아, 내가 너를 붙들었는데 너 왜 뒷발질하느냐?” <너만 힘들다. 그러지 말아라.>하는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미 주님께 부름 받아 주님께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면 오히려 내가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 있는 것이 축복인 줄 알고, 늘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17-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100년 전 목회했던 찰스 J. 브라운(1806-1884) 목사님이 쓴 『목회』란 책에서 <목회의 목표를 알려주는 3구절>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얼마 전 본 책입니다.

 

첫 구절이 오늘 본문 사도행전 26:18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두 번째 구절은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세 번째 구절은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 세 구절이 <목회자가 무엇을 목표로 사역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18절은 예수님이 바울을 사역자로 세운 목적을 말씀했습니다.

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오게 하는 것이요

② 이방인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③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얻어 거룩한 무리를 만드는 것이고,

그 거룩한 무리들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오늘의 목사의 사명임과 동시에 만인제사장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3. 23절 <변론의 핵심>입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23절)

 

무슨 말씀입니까?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은 이루어졌으며, 구원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동등하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의 변론 핵심은 자신은 원래 <대제사장에게 보냄을 받은 사도로서, 예수 믿는 자를 잡아오는 사명을 받은 자인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아 예수를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라고 변론을 한 것입니다. 재판결과는 다음 주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바울이라 생각을 하고, 바울처럼 주님을 확신 있게 증거하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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