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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uxLmiLNNrdg
본문 사도행전 26;24-32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9-23

사도행전 26:24-32 예수 마니아(mania)가 되라

 

오늘은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 <마틴 리뮬러(Martin Niemo¨ller)> 목사님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리뮬러 목사님이 사역 당시 독일은 아톨프 히틀러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히들러 하면 일반 사람들도 이를 가는 사람이었는데 리뮬러 목사님도 ‘이 나라를 건지려면 히틀러가 죽어야 된다, 히틀러는 적그리스도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끌어 내리려고 정치운동을 했습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발각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히틀러를 향해 “이 원수, 이 죽일 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감옥생활 8년째 2차 세계대전(1939. 9. 1 ­ 1945. 9. 2) 이 끝났고, 목사님도 석방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석방되었을 때 히틀러는 전쟁 패배하자 비관하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후였습니다.

 

석방 후에 목사님은 2차 세계대전을 돌아보며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전쟁 책임 고백서』였습니다.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책임은 히틀러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서 심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앞만 보고 한 줄로 서서 심판을 받는데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서 문득 큰 소리로 심판 받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 보다 먼저 온 사람을 심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쩌렁쩌렁하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는고?”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무도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리뮬러 목사님은 “아무도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는 말을 듣는데 많이 들어보았던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이 바로 ‘히틀러’였다는 것입니다.

그 꿈도 놀라운 사실인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꿈을 칠일 동안 7번 연속해서 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이나 같은 꿈을 꾼 목사님은 마침내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저렇게 된 것도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교회 목사와 교인 중에 누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내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엄청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쓴『전쟁 책임 고백서』내용을 이렇게 수정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교회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교회가 복음을 바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내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제가 <마틴 리뮬러> 목사님의 이야기로 말씀을 열게 된 것은 지금 우리가운데도 이 목사님과 같은 유형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은 다하지 않은 채,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면 쉽게 ‘이 문제는 전적으로 00 때문이다’하면서 화살을 돌려버립니다. 그러나 정작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울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지만 바울은 “이방인과 이스라엘 자손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100% 달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마지막 사명 <임금,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지난주일 생각한 말씀을 잠시 되새겨 보십시다.

바울은 헤롯 아그립바 2세가 변명하라고 하자 그 기회를 이용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는 대제사장의 사도로,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였다.

그런 내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의 사도가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유대 민족이 수천 년 동안 기다렸던 메시야이다.

-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 예수를 믿으면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세상을 경험한다.

- 예수를 믿으면 사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는다.

이런 내용으로 헤롯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전파 후의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말씀합니다.

 

1. 베스도 총독의 반응을 살펴보십시다.

24-25절을 보십시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베스도는 바울의 말을 듣고 나서 소리를 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4절)

베스도는 바울을 <미친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하는 말을 이해함에 있어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미쳤다고 해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미친 사람, 즉 정신병자’로 이해했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정신병자는 쉽게 말해서 ‘머리가 돌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머리 위에 손을 올려서 빙글 빙글 돌리면서 ‘너 돌았다’는 표현을 합니다.

보통 미친 사람은 늘 싱글벙글 웃고, 옷은 남루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지 않습니까?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미쳤도다.” 라고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미쳤다’는 헬라어는 ‘마이네’입니다.

‘미치광이’는 헬라어로 ‘마니안(manivan)’입니다.

이 ‘마니안(manivan)’에서 파생된 단어가 마니아(mania)입니다.

영어 발음대로 하면 메니아이지만, 국어로 표기할 때는 마니아로 하는 것이 맞다 고 해서 마니아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에 마니아가 들어갔지요. <예수 마니아(mania)가 되라>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미쳤도다!>는 말에서 – 예수 마니아가 되라고 정해 본 것입니다.

 

마니아(mania) 단어는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것, 열광, --에 대한 광적인 열심>이란 뜻이 있습니다.

어떤 한 분야에 미친것 같은 열정이 있다면 그 사람을 마니아라고 합니다.

컴퓨터만 보면 만지고, 뜯고, 고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재미있어 하는 사람을 <컴퓨터 마니아>라고 할 수 있고,

 

어떤 목사님은 낚시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수요일 오전에 낚시하러 갔는데 밤이 되었는데 오늘이 수요일인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 목사님이 오시지 않아서 전화했더니 낚시터였으니....결과는 상상에 맡깁니다. 이 목사님은 <낚시 마니아>입니다.

음식도 좋아하는 것에 따라 <김밥 마니아, 짬뽕 마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네가 미쳤도다.” 라고 한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내가 볼 때 너는 정신은 온전하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너는 하나님 때문에, 예수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 보니 완전히 예수 마니아 됐다. 너 완전히 중증 환자처럼 도에 지나쳐 가지고 빠졌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보세요.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바울이 마니아가 된 것은 학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학문일까요?

원래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모든 방면을 공부를 한 사람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학문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바울이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을 전파하니 베스도가 볼 때에 그가 구약성경 때문에 완전히 예수의 마니아가 되어버렸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미쳤다고 하는 베스도 총독에게 대답합니다.

25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나 지금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참된 말, 온전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성령을 충만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사도행전 2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을 받기 위해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열흘 동안 성령받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아침 그토록 기다렸던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 집에 가득 임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불로 임하신 것처럼, 성령하나님은 불로서 임하셔서 120명의 성도 머리 위에 불로 임했습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영으로 채웠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배우지도 않았던 외국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이 터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보고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행 2:13)

지금 이 사람들이 술 취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오전 9시에 성령하나님이 임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조롱하는 사람들은 오전 9시에 모조리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술 취한 사람,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13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나를 사람들이 미친 광이 취급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보였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많은 병자 고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정신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자, 말씀을 정리해 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께 미친 사람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도 – 성령님께 술 취한 사람

사도 바울 – 예수께 미친 사람 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분야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은 모두 그 분야에 미쳤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나오는 조선시대 김홍도는 – 그림에 미친 사람이고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 지도 제작에 미쳤습니다.

 

그러니 정신이상자가 아닌, 한 분야에 미쳤다는 말은 <한 분야의 마니아가 되었다는 말이므로 좋은 말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멋진 말인 것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들은 무엇에 미쳐있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처럼 - 예수님께, 복음에, 십자가와 부활에 미쳐 있는지?

아니면 <복음도 아니고, 세상 것도 아니고 어지 중간한 지점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수 마니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자가, 항존직이, 성도들이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너무 좋아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너무 좋아> 예수님에 열광하는 예수 마니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가족, 친척, 이웃, 직장동료)이 나를 볼 때, 저 사람은 “예수에 미쳐 있는 사람”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가 보십시다.

베스도 총독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예수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2.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반응

베스도 총독에게 말하던 바울은 헤롯 아그립바 2세를 향하여 예수를 영접하라고 권면합니다. 26-27절을 읽어 보십시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을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니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베스도는 로마 사람이요,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 하지만, 헤롯 아그립바 왕은 그렇지 않기에 예수를 영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 증조할아버지 헤롯 대왕 때 –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당신 할아버지 헤롯 안티파스 때 - 예수님이 사역했고, 세례요한이 죽었고, 예수 님께 여우라는 소리를 들었고, 예수님을 재판했다.

당신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 때 –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당신 아버지는 벌레가 물어서 죽었지 않는가?

그리고 당신 헤롯 아그립바 2세는 --- 예수님의 모든 사건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지 않는가? 당신은 유대 왕이니 성경에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는가? 그 메시아가 예수님이다. 그러니 영접하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때 <헤롯 아그립바 2세>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28절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다르게 번역하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간단한 말로서 나를 예수 믿는 자로 만들려고 하는가? 하며 복음을 영접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때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유명한 말을 합니다.

29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도전이 되는 말씀이 없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말씀이 없습니까?

저는 이 말씀에서 <찔리는 말씀, 부러운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 있게 선포한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너는 나처럼만 되라”

선생님이 학생에게 “너는 나처럼만 되라”

목사가 성도에게 “성도님은 나처럼만 되세요.”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결박당한 죄인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당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표현입니까? 예수님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니, 복음 안에서 사는 삶이 너무나 좋았기에,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히 행복했기에 ...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을 빼고는 ...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는 바울의 마음이 오늘 우리 마음에도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재판(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의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실은 제대로 맺지 못했지만 전도의 사명은 100%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에 대해서 총독과 왕은 모든 심문을 한 후 죄가 없다는 말을 둘이 합니다. 30-31절의 내용이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황제께 상소했기에 로마로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예수 마니아로 보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옆에 있는 성도에게, 가족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 한 분에 열광하는 ‘예수 마니가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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