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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L22sekxLdFo
본문 이사야 61:1-3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9-30

이사야 61:1-3 재 대신에 화관을

 

지난주일 설교 제목을 기억하는 성도님 혹시 계십니까?

<예수 마니아(mania)가 되라>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하는 복음을 듣다가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미쳤다’는 헬라어는 ‘마이네’ / ‘미치광이’는 헬라어로 ‘마니안(manivan)’

‘마니안(manivan)’에서 파생된 단어가 마니아(mania)라고 했습니다.

마니아(mania)는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것, 열광, 00에 대한 광적인 열심”이란 뜻으로 한 분야에 광적인 열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분야에 마니아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예수 마니아였고> 지금 우리도 ‘예수 마니아(mania)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 가운데는 “예수 마니아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 마니아가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예수 마니아가 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전자도 문제요, 후자도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어떻게 해서 예수 마니아가 되었을까요?

바울이 예수 마니아가 된 출발선은

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부터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정오 태양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실명했던 눈도 삼일 만에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바울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성, 지성>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 순간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부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마니아가 된 것입니다.

 

② 아라비아 광야 3년의 신학수업을 통해서 예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신 메시아인지, 유대민족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인지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능통한 그였기에 구약에서 말씀하신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검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오신 예수님을 비교해 보니,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기에 .. 그는 주저 없이 예수 마니아가 된 것입니다.

 

③ 어려운 순간마다 예수님을 체험했기에 예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바울의 전도여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때로는 기적을 베풀어 주심으로, 때로는 환상 가운데서 말씀해 주심으로, 매 순간마다 바울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마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 마니아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 성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 성도들이 신구약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 성도들도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럼 아무 말하지 않아도 예수 마니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 이렇게 되어 <예수 마니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이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나는 경험이나,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순간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은 <여러분의 목사>인 제가 도움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님께 매달려 응답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성경 말씀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거 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이 태어나기 약 700년 전에 사역한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좁게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사역한 시대로부터 150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했을 때를 1차 배경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을 <넓게 보면>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한 후 500년이 지나, 오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역하실지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이사야 사역 시기를 뛰어 넘어 → 포로 귀한 후의 말씀 →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 그러니 이 말씀을 통해 바벨론에서 포로로 귀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야하고,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사야 선지자가 히브리 백성에게 처음 예언한지 700년 만에, 예수님은 나사렛 한 회당에서 오늘 본문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읽은 후에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저자 누가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20-21)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로 통해 예언된 이 모든 내용이 지금 너희들에게 성취 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이런 역사들을 너희들이 눈으로 똑똑히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는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살펴보십시다.

1-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1-2절에 나타난 메시아의 사명은

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는 것(1절)

②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1절)

③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1절)

④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 것(1절)

⑤ 구약시대 희년처럼, 완전한 회복과 자유와 평안을 주는 것(2절)

 

예수님은 예언된 이 말씀 그대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중에 3절 말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으로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세 번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찾아보십시오, 한 단어가 세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찾으셨습니까?

 

“대신”이라는 단어입니다.

“대신”이라는 단어는 교환의 단어입니다.

“대신”은 하나가 아닌, 또 다른 하나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신”의 예를 들어볼까요? 한 100년 전쯤 있었던 사냥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냥꾼은 수개월 동안 산에 지내면서 고라니, 산돼지, 호랑이를 잡아서 가죽을 모읍니다. 그에게 잡은 가죽은 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죽을 시장으로 가지고 나와 팔고 그 값으로 대신 먹을 것이나, 연장이나 혹은 돈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가죽을 주고 – 대신 — 먹을 것, 연장, 돈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와 같습니다.

추석에 자녀들이 부모님께 드리려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선물로 사왔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백화점에 들고 가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주고 – 대신 –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바꾸어서 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대신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시면 예수님이 과거 시장에서처럼, 지금의 백화점과 같은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지 않는 것을 예수님이 받으신 다음 그것 대신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세 번의 ‘대신’을 통해 무엇을 교환했는지 보십시다.

첫째, “재 대신 화관을”입니다.

3절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고대 문화에서 재난을 당할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썼습니다.

타고 남은 재를 머리에 얹는 행위는 마음의 황폐함을 상징했습니다. 세상에 불이 꺼지고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 혹은 욕망할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 화관은 흥겨운 승리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에 썼습니다. 월계수 잎이나, 들꽃을 가지고 왕관 모양으로 역은 이 화관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 혹은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 머리 위에 씌웠습니다. 신선한 푸른 잎과 화려한 꽃은 내면의 흥겨움과 아름다움의 경험을 가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재를 뒤집어 쓴 것 같이 황폐해진 사람에게 – 화관을 씌워주어 생기가 도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 이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은 사람, 그들과 함께 하기 싫어한 사람, 그들의 사는 지역에 한 발도 내 딛기 싫어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 결혼에 다섯 번이나 실패한 여인이었습니다. 지금 여섯 번째로 누군가와 살 고 있지만 그는 떳떳하게 소개할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 남들이 휴식할 그 뜨거운 정오에 물을 떠 날랐어야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재를 덮어쓰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상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권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구주로 여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의 인생이 피었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시자 그는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찾았습니다.

 

둘째, “슬픔의 눈물 대신 기쁨의 기름을”

3절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슬퍼서 우는 눈물은 얼굴을 마르게 합니다. 눈에서 얼굴로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은 결국 얼굴을 건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슬퍼하는 날들 동안 얼굴은 마치 태양에 바짝 말라 갈라진 사막처럼 변합니다.

 

반면, 올리브 나무에서 나는 풍성한 기름은 얼굴을 다시 촉촉하고 부드럽게 해주고, 긴장을 풀어주며, 피부를 부드럽게 해 줍니다. 기름을 바르고 얼굴에 해를 받으면 젊의 생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 <슬픔의 눈물 대신 – 기쁨의 기름을> 주신다고 했는데, 진짜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예를 든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가정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급박했던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집에 가셔서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와 함께 그 딸을 고쳐주려고 갑니다. 가는 도중에 12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줍니다. 그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소식을 전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이로는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눈에는 사정없이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이 울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의 바다가 야이로의 집을 채웠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분명히 아이가 죽어서 통곡하고 있는데 울지 말라고 하시고, 죽었는데 ‘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비웃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죽은 아이를 향하여 달리다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아이의 영이 돌아왔습니다. 누워있던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아니가 살아나자 예수님은 그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슬픔의 눈물이 가득한 야이로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더니 그들이 가지고 있던 슬픔의 눈물은 사라졌고, 대신 그들의 얼굴에 기쁨의 기름이 가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셋째, “근심 대신에 찬송의 옷을”

3절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사람이 근심(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함. 또는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힘도 없고, 생기도 없습니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데도 관심이 없고, 일이나 놀이에 참여할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근심 대신에 찬송의 옷을 입혀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옷”을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망토>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코트가 되겠지요. 코트는 무엇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걸치는 옷입니다. 이 세상에 열렬하게 참여할 준비를 시켜주는 옷입니다. 집을 나가면서 코트를 입는다는 것은 생동감이 있게 일하거나 놀 준비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근심 대신 찬양의 코트를 입혀 주신 사람의 예를 든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탕자는 아버지께 자신의 몫의 유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유산을 받자 팔아서 돈으로 바꿔서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 끝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돼지를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의 목적도, 삶의 의욕도 상실한 더 이상 희망이라고 없는 <근심 가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탕자가 생각을 바꿔먹고 아버지께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고, 안아주었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발에 신을 신겨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고 동네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그 집에는 즐거워하는 소리로 가득 찬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시장처럼, 백화점처럼, 무역거래소처럼 우리가 가진 좋지 않은 것을 받으시고, 대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재 대신 화관을” 주시는 분

예수님은 “슬픔의 눈물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시는 분

예수님은 “근심 대신에 찬송의 옷을”입혀 주시는 분

그렇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메시아를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700년 후에 예수님을 통해 예언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혹 여러분의 삶이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지는 않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그 문제를 받으시고, 대신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150년 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오는 것으로 1차로 성취되었고, 다시 500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셔서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에 약속하셨고, 내 삶에 역사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너무 좋아 바울처럼

예수 마니아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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