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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LMJrjlYgheQ
본문 민수기 32:1-5, 16-19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10-07

민수기 32:1-5, 16-19 성도와 교회는 공동 운명체

 

지난 화요일 저녁 영남대학교 CCC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CCC측에서 부모를 초청해서 CCC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하는지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예배 후에 부모들 간에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부산에서 온 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시고, 아내 분은 배구심판으로 활동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금년 7월 수성못 상화 공원에서 열린 국제 비치발리볼 대회에 심판을 하셨는데, 심판을 하시다가 더워서 죽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기온이 40도를 육박했을 때니까요.

 

이 부부는 부산에서 개척교회를 열심히 섬겼다고 합니다. 열심히 섬기니 남편은 안수집사 직분도 받았고 직분을 받은 후 더 열심히 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긴 결과로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고 장유 지역에 땅을 구입해서 예배당을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건축한 장유 지역에 교인들이 오기 시작했는데, 교회의 주축은 외부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온 사람들이고, 교회주변에서 오시는 분들은 핵심 멤버가 되지 못해서 서로간이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갈등으로 이 안수집사님 부부는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로만 듣던 ‘가나안 교인’을 눈앞에서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저분들이 그동안 직분 받고 열심을 다해 섬겼지만, 교회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이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 공동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교회 공동체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는지?> 에 대한 바른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교회창립 47주년을 맞았습니다.

47년 역사를 돌아보면 기쁨과 감격이 넘쳤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이게 교회인가? 하며 환멸을 느끼면서 억지로 다녔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는 47년의 역사 중에 앞부분 30년은 함께 하지 못했고, 뒷부분 17년 세월을 여러분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한 주일 우리교회의 <출석 헌금 통계>는 이러했습니다.

(2012년 1월 첫 주일)

교회학교 <유치부 15 / 아동부 19 / 청소년부 16 / 청년부 13>

장년부 <주일낮 105 / 주일오후 57 / 수요기도회 39 / 금요기도회 26 / 새벽기도회 33명>

헌금총액 <1,949,500>

(2018년 10월 7일)

이렇게 출발한 교회가 지난주일 이렇게 변했습니다.

교회학교 <유치부 11 / 아동부 21 / 중고등부 13 / 청년부 29>

장년부 <주일낮 318 / 수요성경기도회 78 / 새벽기도회 116>

헌금총액 <11,536, 500>

 

17년 전 우리교회의 모습과 지금 현재 우리 교회를 비교해보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감사하다!! /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고 부흥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동안 함께 섬긴다고 애쓴 성도들의 헌신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한 번 드립시다.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는 교회를 목회하는 저는, 계속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려면 늘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약속의 땅이 점령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진을 친 모압 평지에서 생긴 일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 말씀에는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의 <아모리와 바산,

미디안 민족>을 차례로 정복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렀을 때에는 요단 동편의 땅이 이스라엘의 차지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전혀 예기치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 대표가 모세를 찾아와, 우리 두 지파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기 요단 동편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1-5절 내용이 그 내용입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과 브온 ○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이 모세라면 <르우벤과, 갓 지파>의 대표가 와서 우리는 요단 동편 땅이 좋으니, 이곳을 우리의 소유로 주시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대답하겠습니까?

 

여러분, 두 지파 대표가 한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즉흥적으로, 순간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단 동편의 땅을 점령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런 마음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품은 생각을 모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두 지파가 <요단 동편>땅을 달라고 한 이유를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르우벤과 갓 지파가 소유한 가축 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가축에는 출애굽 할 때 데리고 나와서 번식한 가축도 있었을 것이고, 최근 이방 족속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많은 가축 떼를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지파보다 훨씬 많은 가축 떼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가축을 가졌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많은 가축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가 힘들게 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많은 복이 –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는 지금 현재도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셨는데, 그 많은 물질이 도리어 신앙의 방해가 되어서 신앙생활에서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은사(외모, 달란트 등)을 주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교회도 보세요. 명성교회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이 명성교회를 통해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교회를 부흥하게 해 주었는데, 많은 교인수와 물질적인 풍요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복을 주셨다고 생각되시거든

그 복을 잘 관리하시고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늘 조심하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두 곳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잠언 30:7-9 말씀입니다.(아굴의 잠언)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우리 모두 자족하며 하나님을 잘 섬겨 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르우벤, 갓 지파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료 그림 참고)

이 두 지파는 광야 40년 세월 진군하면서 남쪽에서 진군한 지파입니다. 회막을 중심으로 남쪽에 <르우벤, 시므온, 갓> 세 지파가 함께 했는데, 늘 옆에 있다 보니 서로 좋지 않은 면에서 닮아버린 것입니다.

두 지파의 문제는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이기주의> 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요단 동편을 정착하면 다른 열 지파는 어디에서 정착해야 하는지? 자신들이 요단 동편에 정착하면 가나안 땅은 누가 정복해 가야 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선 목축하기 좋고 풍요로워 보이는 땅이니 자신들이 정착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탐욕>입니다.

자신들이 가축이 너무 많았다면 다른 지파와 가축을 나누면 좋았을 텐데, 그 가축을 위해 요단 동편의 땅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기주의> <탐욕>은 오늘 우리들이 늘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개인도 경계해야 하고,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을 들은 <모세의 반응>을 살펴보십시다.

모세는 요단 동편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하자 두 지파를 향하여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6-7절을 보십시다.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모세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두 지파의 책임자에게 그들의 안일함을 책망했습니다.

너희들의 그런 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낙심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낙심시킨 사건의 예를 하나 듭니다.

그 사건은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 하지 말라”(신 1:21) 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며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더 신중하게 올라간다고

12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로 뽑아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음으로 올라가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올라 보냅니다. 40일이 지나고 정탐한 12명이 와서 보고했습니다.

12명중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땅도 좋고, 모든 것이 좋지만 우리 능력으로는 가나안족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빠졌고, 약속의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빠졌습니다.

 

반면 12명 중 두 명(여호수아와 갈렙)은 –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부정 10명 : 긍정 2명 / 부정 83% : 긍정 17%

백성들은 보고를 받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 “우리가 어디로 가랴” 하며 낙심해 버립니다. 이 사건 때문에 금방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돌고 돌아 40년 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부터 38년을 더 걸렸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된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20세 이상의 장정이 대략 60만 명가량이었으므로, 여자가지 합산하면 20세 이상의 남녀의 수는 무려 120만 명에 달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40년 동안, 정확히 38년 동안 광야에서 죽어갔다면, 매일 80명 이상이 죽은 셈이 되고, 시간당으로는 3, 4명이 죽어간 셈입니다. <약속의 땅을 취하라는 것을 거절한 결과입니다.>

 

20세 이상의 사람들 가운데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그 아픔을 겪으면서 힘들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지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지파>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가 좋사오니, 요단 동편 땅을 분배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과 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광야 40년 생활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가나안이 보이는데 거기서 <우리는 여기 머물게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말이었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말이었고, 가나안을 정복해 가야할 10지파의 사기를 완전히 꺾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특새에 나 하나쯤 빠지는 것이야?

노회를 우리교회에서 해도 나 하나쯤 빠지는 것이야? 문제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 사람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불같은 분노와 질책에 두 지파 지도자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안을 수정해서 수정안을 가지고 모세 앞에 돌아왔습니다.

 

수정된 내용이 16-19절입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

 

수정안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들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요단 동편에 머무를 수 있도록 성읍을 요새 화하는 작업을 먼저 하겠다.

둘째, 장정들은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정복전쟁에 동참 하겠다. 그것도 최선봉에 서서 싸우겠다.(정복전쟁이 끝날 때까지)

셋째, 자신들은 이미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 서는 기업을 받지 않겠다.

 

두 지파의 수정안은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원래 이때까지 해오던 정상적인 행둔 대형으로 한다면 르우벤과 갓 지파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두 번째로 행군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원해서 제일 선봉에 서겠다고 한 것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위험한 일을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총알받이 하겠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가나안 땅은 욕심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열 지파들은 약속의 땅에서 더 넓은 기업을 얻을 수 있게 되니까 불평할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 결과 =====================

모세는 수정안을 들어본 후 그들의 요구를 허락해 줍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 지파 거기에다 므낫세 1/2지파도 요단 동편을 분배함으로 그 문제를 일단락 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가 분열되는 것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요단 동편에 머물렀던 두 지파 반은 <성막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부터는 제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반대로 이방 종교를 믿는 주변 민족들과는 너무 가깝게 살았기에 영적으로 그 만큼 다른 지파보다 빨리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압과 암몬에게 가장 먼저, 가장 자주 침입을 당하게 되었고, 그리고 훗날 앗수르의 침공 때 가장 먼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 “하늘의 것을 목적하면 하늘과 땅을 다 얻을 것이지만,

땅의 것을 목적하면 하늘과 땅의 것들을 다 잃게 될 것이다”

말 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교회창립 47주년을 맞는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같은 신앙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이기주의>와 <탐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교회 공동체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기운 빠지게 하는 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계속해서 부흥하려면 우리의 신앙관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기주의 → 이타주의

탐욕 → 자족하는 마음

을 갖고 우리 정동공동체가 늘 하나 된 모습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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