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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VRh0XzAsWgs
본문 사도행전 28:1-1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11-04

사도행전 28:1-10 멜리데 섬에서의 선교

 

지난해 1월부터 시작한 사도행전 강해가 드디어 오늘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 도착했습니다. 28장 말씀을 세 시간에 걸쳐서 전하려고 하는데, 마지막 세 시간 동안 큰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27장의 말씀에서 바울 일행이 두주 동안 풍랑으로 고생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구조된 후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섬이 멜리데 섬이었다고 본문 1절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난 번 보았던 지도를 다시 보십시다.

<참고 - 바울의 4차 전도 여행지도>

가이샤라에서 출발 / <아드라 뭇데노>로 가는 배를 타고 항해하다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무역선 <알렉산드리아 호>를 갈아탑니다.

항해하여 <그레데 섬> 미항에 도착했고,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자고 했지만 선장, 선주, 백부장은 큰 항구 뵈닉스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뵈닉스로 가다 초겨울에 부는 무서운 계절풍 <유라굴로>를 만나 14일간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죽을 고생 끝에 <멜리데> 섬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이름은 <몰타공화국>입니다. 우리교회 최예진 청년이 몰타에 가서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한 곳입니다. 멜리데 섬의 크기는 제주도의 6분의 1정도의 작은 섬입니다.

 

우리는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과 일행을 보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지도를 다시 보세요. 유라굴로 풍랑을 만난 것은, 그레데 연안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배가 14일 동안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타고 있던 배가 어느 쪽으로 갈 수 있을까요?

출발했던 가이사랴로 되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아래로 아프리카 쪽으로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서쪽으로 계속 가서 스페인으로도 갈 수 있었습니다.

표류하는 배가 어디로 갈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잘 보십시오. 14일 동안 표류하던 배가 도착한 곳이 다름 아닌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여러분, 멜리데 섬에서 위쪽을 보면 83km지점에 시실리 섬이 있고, 그 위에 이 탈리아가 있고, 이탈리아 수도가 <로마>입니다.

지금 바울이 14일 동안 풍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했고, 구사일생으로 멜리데 섬에 도착했는데, 그 섬이 <로마로 가장 가까운 섬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묵상하다 보면 찬송가 한 곡이 생각납니다.

오늘 설교 후 부를 373장 <고요한 바다로>입니다.

이 찬송 중에 2절 가사를 제가 읽어드립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음에서, 입술로서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찬송 가사는 <톱레이디(A. M. Toplady) 목사>(1740-1778)님이 쓰셨습니다.

톱레이디 목사님은 38년을 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습니다만, 누구 못지않게 많은 풍랑을 겪었던 분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난에 늘 시달려야 했고,

육신적으로 폐병에 걸려서 고생을 했습니다.

영적으로는 목사가 되어 사역을 하면서 자신보다 37세나 많았던 요한 웨슬레 목사님과 교리 문제로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32세 때였습니다. 32세 때 육신은 폐결핵을 앓았고, 영적으로는 요한 웨슬레와 결별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때 이 찬송시를 쓴 것입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톱레이디 목사나, 본문의 사도바울 뿐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삶도 깊숙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큰 풍랑을 만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문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자녀 문제로 힘들었던 분도 계실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 힘들어서 고통당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인간관계 문제로 고민 고민하여 힘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풍랑을 만나 그냥 지나와는데 돌아보니 그 풍랑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 풍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셨던 자리, 구원받는 자리로 인도했음을 고백하실 것입니다.

 

마치 욥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의 삶도 감당하기 힘든 풍랑으로 인해 순금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바울도 보십시오.

바울이 가이샤라에서 배타고 어디로 가고자 했습니까? 로마였습니다.

바울이 사명 때문에 로마로 가야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0) 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14일간 표류한 끝에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멜리데 섬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여러분! 지금 현재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풍랑이 일어나더라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만 굳건하게 부여잡고 있으면, 때로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풍랑을 이용하셔서 여러분이 가야 할 축복의 자리, 사명의 자리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럼,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 일행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계속 살펴보십시다.

2-6절 말씀을 먼저 읽어보십시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 그들은 그가 붓든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여러분! 알렉산드리아호가 파선하여, 헤엄 칠 수 있는 이는 헤엄쳐서, 어떤 이는 파선하는 배의 나무나 물건에 의지하여 뭍으로 나왔을 때, 그들의 모습이 어떠했을까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날씨는 초겨울이었고 비가 내렸으니 가히 그들이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서 온몸이 추위 때문에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어 줍니다. 불을 피워서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먹을 것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불을 피워 도움을 주자, 바울도 그냥 있지 않고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서 불에 넣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솔선수범한 것입니다.

 

바울이 나뭇단을 불에 넣을 때, 바울이 들고 있던 나뭇단에서 겨울잠을 자려던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어 버렸습니다.

3절 하반절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를 (원어에는 “독사가 수직으로 매달려서 대롱거리다”)로 말씀합니다.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사에게 물린 바울은 그 즉시 독사를 불 위에 떨어뜨렸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크신 분들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것입니다. 저도 중학교 다닐 때, 1년 선배가 독사에 물린 것을 봤습니다. 당시 가난한 시대라서 부모님들이 용돈을 주지 않아서 학생들이 뱀을 잡아서 뱀 집에 팔면 500원, 혹은 1,000원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과자도 사 먹고 군것질을 했습니다.

1년 선배도 독사 한 마리를 잡아 비닐봉지에 넣고 가게로 가게 되었습니다.

비닐에 있는 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놈 팔면 500원, 이 놈 팔아서 000 사먹어야 하지”하다가, 비닐 안에 있는 뱀에게 손가락을 물어버렸습니다.

 

뱀에 물리자 손가락부터 순식간에 부어올랐습니다. 지금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갔을 텐데, 당시에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동리 어르신들이 <뱀에 물린 손가락을 큰 비닐로 싸고, 그 속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넣어서 해독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개구리가 들어가서 독 때문에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도 독사에게 물렸는데 .......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사에게 물린 바울을 보면서 원주님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바다에서는 살아났지만, 이 사람이 극악한 살인범이었기에 신이 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멜리데섬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알고 있었던 <속설>때문입니다.

옛날 아프리카의 북부 리비아 해안에 아주 완악하고 포악한 해적들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서 배가 파손되고, 이들이 바울처럼 멜리데 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신히 헤엄쳐 나와 ‘이제 살았다’하고 쉬고 있는데 이상한 뱀이 나타나서 이들을 다 물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멜리데 사람들이 바울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이 바다에서는 용케 살아났지만, 공의의 신이 뱀으로 나타나서 바울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들의 생각과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시간이 지나도 바울의 몸에는 아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뱀에게 물린 손이 붓든지, 혹은 독이 바울의 온 몸에 퍼져서 갑자기 쓰러져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울이 멀쩡하였습니다.

 

그러자 ... 멜리데 사람들이 처음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을 합니다.

독사에게 물린 이 사람은 .... 사람이 아니고, 신이구나 생각하고 <신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바울이 신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디서입니까?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면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설교를 듣는데 얼마나 진지하게 듣는지, 바울은 그 사람이 낳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큰 소리를 쳤지요. <네 발로 일어서라> 그러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때 루스드라 사람들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믿어버렸습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이 인간임을 밝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함으로 마무리 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신으로 취급받습니다. 물론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처럼 자신은 인간이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뱀에 물렸지만 무사했던 이 사건에서 두 가지 정도는 꼭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6:17-18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여러분 이런 기적은 지금도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기적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마가복음 16:15 절에 그런 역사가 나타나는 자를 소개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렇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이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선교사님들의 선교보고를 들어보면 선교지에서 이런 기적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선교지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한국 땅에도 이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무 일이 없는 것도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을병(암)에 걸렸다가 나으면 –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는 폐차가 되었지만 손 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면 – 기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확실한 기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도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뱀에 물렸는데 아무 일이 없는 것이 기적이듯이

오늘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자동차 운전하다가, 혹은 질병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 일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고, 오늘도 이렇게 건강하게 예배당에 나와 예배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기적임을 믿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십시다.

7-10절입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7절에 보면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가장 놓은 사람”의 뜻은 <첫째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보블리오는 이 섬에서 첫째가는 사람, 영주되는 사람 같습니다. 멜리데 섬의 1인자가 바울의 그 동안의 모든 사정을 듣고,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3일 동안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러던 중에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린 것을 알고 바울은 <기도하고, 안수하여> 병을 치유해 줍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준 것처럼 바울도 보볼리오의 아버지의 병을 고쳐준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멜리데 섬에 있는 다른 많은 병자들도 병을 고치려고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아마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임시진료소를 만들어서 기도하고, 의사였던 누가는 의술로서 최선을 다해서 병자를 치료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9절 하반절)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은, 육신의 병은 물론이요, 영적인 병도 치료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육신적으로는 병이 나았고,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적으로도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멜리데 섬에서 선교한 이야기,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역사가들은 멜리데 섬 1인자 이었던 보블리오는 개종하였고, 후에 멜리데 섬의 최초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육이 고침을 받은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과 바울 일행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10절을 보십시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영적인 은혜가 물질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면 그 증거로 물질이 사용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보블리오 와 원주민들이 영육의 은혜를 받았더니, 3개월 동안 276명을 후한 예로 대접했고, 그들이 떠날 때에 그들이 쓸 것을 배에 싫어주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심방을 오니,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고, 토색한 사람들에게 네 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눅 19장 참조)

 

오늘 여러분도 이런 면에서 여러분 스스로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물질을 잘 쓰십니까?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헌금(십일조, 감사, 선교, 장)을 하는데, 교우들을 위해서 밥 한 그릇을 사려면 손이 벌벌 떨립니까? <이유는 은혜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교우들이 보블리오와 멜리데 섬 원주민처럼 영육간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질도 나누고, 시간도 나누고, 기적도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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