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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vljBQ7q1I40
본문 야고보서 5:7-1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12-16

야고보서 5:7-11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통하여 세 가지 기다림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의 기다림은 첫 번째 기다림 보다는 두 번째, 또 두 번째 기다림 보다는 세 번째 기다림, 즉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곧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하고, 만약 바르게 기다리지 못한 분들은 바르게 수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모델을 잘 선정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는 기다림의 모델을 몇 사람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을 생각하기 전에 본문의 배경이야기를 좀 살펴보십시다.

성경 66권중 어떤 말씀이든지 우리가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말씀은 그 말씀을 처음 시작하는 몇 구절입니다.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은 야고보서 1장 1절입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말씀에는 야고보서의 저자와 수신자가 나옵니다.

저자는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스스로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몇 명의 야고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도 2명의 야고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친 동생 야고보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예수님에게 친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친 동생 이름이 여러 명 나옵니다.

마가복음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지금까지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후 그 이후 요셉과 마리아는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 4형제와 여동생 최소 2명을 낳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최하 7남매의 맏이로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동생이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까지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야고보를 직접 만나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 육신으로는 형님이었던 예수,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 부자 요셉의 무덤에 수의를 입고 안장된 예수, 그 예수가 부활해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눈앞에 서서만 계셨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과 야고보는 친밀한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야고보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다음부터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서 보았듯,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 첫 번째 총회장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음” 또는 “추종자”란 이름의 뜻이 있지만,

그 당시 역사가들은 그를 <의로운 야고보> 혹은 기도를 워낙 많이 해서 그의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되었다고 <낙타 무릎의 소유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주후 62년경 산헤드린 공회에서 돌을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야고보서는 순교하기 전인 주후 60-62년 사이에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럼 수신자를 살펴보십시다.

수신자를 : 1장 1절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란 본래 이스라엘을 제외한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즉 개종한 유대인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해서 알듯이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날, 예루살렘 교회에는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독교들은 유대로 사마리아로 그 외에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수신자는 바로 그들을 말합니다. 핍박을 통해서 흩어진 자와 그들로 통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수신자입니다.

 

흩어진 성도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일반적인 생활은 말하나 마나 힘들었겠지요?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또 영적인 생활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박해가 있어서 흩어졌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더 심한 박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이 박해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주후 54년부터 통치한 네로 황제가 박해했습니다. 네로 황제에 의해서 바울과 베드로도 순교를 했으니 당시 그리스도인들도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루살렘 총회 <야고보 총회장>은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기 위해서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이 배경만 알면 야고보서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아! 신앙생활하기 힘들지만 믿음에서 떨어지지 말고 인내해라”,“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아! 힘들 때일수록 기도하는 자가 되라”며 권면합니다.

 

이런 이해를 하신 후에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본문은 힘든 현실(외적인 핍박, 내면적인 갈등)에서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기다림의 표준>으로 세 사람을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농부를, 둘째는 선지자를, 셋째는 욥의 인내를 표준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농부의 기다림(간절함)

7-8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8절은 오늘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와 같습니다.

“주의 강림이 가깝기에” 성도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를 풀어가는 말씀입니다.

첫째가 7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이 말씀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 보면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분들은 농사를 쉽게 생각합니다만 사실 농사보다 더 힘든 일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기계화가 되어 조금 쉬워졌다고 하지만 아직 힘듭니다. 그러니 옛날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밀, 보리, 포도, 무화과> 든 어떤 농사를 지어도,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은 때에 맞도록 비를 내려주셔야 풍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비가 적게 내리는 이스라엘에서는 파종시기에 내리는 이른 비와 결실기에 내리는 늦은 비가 제 때 적절하게 내려줘야 농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농부는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때에 맞게 비를 주실 하나님을 늘 바라보았습니다. 하늘로부터 비가 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비 – 보리 파종 직후인 10, 11월경에 오는 비

늦은 비 – 추수 직전인 다음해 3, 4월경에 오는 비입니다.

이 두 번의 비는 이스라엘에서 농사를 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비였습니다.

야고보는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신앙생활에 적용시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른 비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신앙의 싹이 나고 신앙이 자라고 있지만 우리의 신앙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늦은 비가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른 비가 “그리스도의 초림”이라면, 늦은 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농부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우리이 간절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농부에게 있었던 <간절한 기다림>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오늘 우리에게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260장 가운데 재림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318회가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그만큼 그 시대 성도들은 재림을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재림이야기하면 이단에서나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신앙을 흩트려놓은 결과입니다.

이제 대림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재림>을 농부의 간절한 기다림에서 배우셔서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선지자들의 기다림(인내)

10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의를 외친 선지자들은 모두다 고난 받았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을 한 번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믿음의 선배들 이름이 나옵니다.

 

아벨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요셉 – 모세 – (사사, 선지자, 그 이후의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해서 다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1:33-38 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소개한 히브리서 저자는 이어서 12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믿음의 선배들이 가지고 계셨던 기다림의 자세입니다. 그 자세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의 덕목입니다.

사실 인내, 오래 참음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하나이며 / 또 사랑의 덕목 중에 첫 번째(”사랑은 오래 참고: 고전 13:4) 덕목입니다.”

 

문제는 오늘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인내의 덕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얻었다가도 조금만 힘들면 사표를 씁니다. 심지어는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갈 사람들도 이력서를 받아보면 교회가 조금만 힘들면 교회를 옮기는 것을 봅니다. 어떤 교육전도사님들의 이력서를 보니 30년 가까이 목회한 제가 옮긴 교회 수 보다 더 많은 것을 봅니다. 안타깝지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아!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 중에서도 오래 참았는데, 그것을 본으로 삼으라!> 부탁했습니다. 우리 정동교회 성도님들도 세상의 일로, 교회의 일로, 인간관계로 힘들지라도 <인내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욥의 기다림(연단)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기다림, 인내 하면 성경에서 가장 모델로 꼽는 사람이 <욥>이지요.

욥기 42장에서 욥의 인내에 대해 알면 좋을 몇 구절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욥기 1:20-23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열 명의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고백한 말입니다.

 

그 이후 건강을 잃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숨구멍)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아내도 욕을 하고, 친구들도 욕을 합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 욥은 이것은 <주님의 나에게 주신 훈련과정>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고백을 하나 더 합니다.

욥기 23:8-10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연단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영적인 변화를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물질과 가정의 변화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욥기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시키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합니다.

친구와 관계가 회복된 후 욥은 처음 받은 복의 배를 받습니다.

 

지금 야고보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욥이 연단을 받으면서 기다렸을 때에 아름다운 결말을 본 것처럼, 지금 핍박, 비난 등 힘든 연단을 받고 있는 너희들에게도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아름다운 결말이 있을 것이니 너희들도 욥처럼 연단 속에서도 기다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농부의 기다림(간절함), 선지자들의 기다림(인내), 욥의 기다림(연단)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아직 한 절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9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성도들끼리 서로 원망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이 벌써 대림절 3번째 주일입니다.

오신 주님, 내 마음에 오시기를 원하는 주님,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는 제대로 기다리고 계십니까?

주님의 오심은 초림 때나 재림 때나 기쁨과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림절에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를 확인하셔서 바르게 기다림으로 <개인에게는 영적 성장이, 교회 공동체에는 영적 부흥>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대림절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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