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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gXUZJfND3S0
본문 고린도전서 1:17-18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1-20

고린도전서 1:17-18 십자가의 도(道)

 

<사진 1, 빌리 그래함 도서관>

2015년 미국교회와 영성공동체를 탐방하면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빌리 그래함 도서관을 본 후에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사진 2, 빌리 그래함 목사 사진>

목사님은 전 세계 186개국에서 약 2억 1천 500만 명에서 직접 설교했고,

라디오와 TV를 통해 설교했는데 방송으로 설교를 들은 사람이 22억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1993년 한 해 동안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구세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사진 3, 여의도 집회 모습>

우리나라에서도 1973년 여의도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초청하여 전도집회를 열었는데, 그때 여의도 광장에 약 110만 명이 운집회서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목사님이 지난해 2월 21일 만 99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이 떠나셨지만 목사님이 남긴 명언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

그는 미국 여러 대통령의 영적이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도

“나는 정치가 내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육신의 삶이 마쳐져 가실 때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부르실 때가 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 때로는 여기가 피곤하다”며 천국을 소망하셨다고 합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목사님이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 어떤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지금까지의 사역 중에서 혹시 아쉬운 것이 있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나는 복음이 교회 밖에만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 복음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이 말씀에 우리 모두 경청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복음이 교회 밖에만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 복음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교회 밖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교회 안에도 필요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성도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고, 교회에 다닌 지 수 십년이 된 성도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주일 낮 예배 시간을 통해 우리가 반듯이 알고 있어야 할 복음에 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십자가의 도(道)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처음 받게 된, 고린도 교회는 주후 51년경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설립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히 침체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바울을 위해 하나님은 3가지 선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 동역자인 디모데와 디도 / 부활하신 예수님> 이셨습니다.

 

이 3가지 선물을 받은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고린도 사람들의 마음 밭은 좋지 않았습니다.

 

- 그들은 교양보다는, 물질적 부를 숭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개인주의자들이었습니다.

- 우상이란 우상은 다 받아들인 종교 혼합주의자들이었습니다.

- 적어도 12개의 그리스-로마 신을 섬기는 신전이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 아프로디테 신전에만 천 여 명의 여 사제들이 기거 하면 종교의식의 하나로

매춘을 일삼을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풍도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바울은 1년 6개월 고린도에서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고린도교회는 설립되었습니다.

 

그 후 4년 정도 지났을 때 고린도 교회에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인의 분열 문제 / 교인의 타락 문제 / 결혼, 우상제물, 은사, 부활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들은 바울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후 55년경 에베소에서 그 문제 해결 방법을 적어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바울은 먼저 가장 심각한 문제였던 <교회의 분열> 문제부터 해결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분열된 이유를 <성도들이 복음을 붙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을 합니다.> 바울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지난 2,000년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바울이 정확하게 판단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듯하게 정립하고, 복음이 중심이 되었을 때에는 <교회는 부흥했고, 교회는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반면 교회가 복음을 무시하고, 복음 이외의 것을 더 내 세웠을 때에는 <교회는 분열했고, 쇠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한국교회도 복음의 관점에서 바라보십시오.

교회가 복음으로 하나 된 교회는 지금도 교회는 부흥하고, 교회는 일치를 이룹니다. 반면에 지금도 교회가 복음은 오간데 없고 다른 것을 중요시 여겼을 때에는 분열하고 쇠퇴함을 봅니다.

 

성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중심으로 살고 있다면 부흥합니다. 뜨겁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제쳐 놓고 다른 것을 붙들고 있다면 마음은 편하지 못하고, 갈등하게 되고, 교회생활은 재미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 개인, 교회, 한국교회가 복음을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복음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붙들고 있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분쟁 문제를 바울이 어떻게 결론짓는지 보십시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사도로 보내심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자신을 보내심은 성도에게 세례를 베풀려고 보내 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세례 베푸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도에 보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세례는 – 구원받았다는 것을 나타나는 표징인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으로 교인들이 분열된 현상을 가슴 아파하며 세례를 누가 집례 했는가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복음 그 자체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의 지혜>는 “말을 철학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수사학 혹은 변론술”을 말합니다.

사실 바울은 고린도에 전도하기 전인 그리스 아덴(아테네)에서는 말의 지혜로 전도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선교결과를 보았을 때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복음을 <말의 지혜>로 전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고린도에서는 <말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복음 그 자체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어 바울은 18절에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구절을 헬라어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고 있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가 가진 성경 본문과 제가 원어의 의미를 살려 다시 말씀한 내용의 차이는 <멸망하는 것도, 구원을 얻는 것도 = 현재적 사건이요, 진행 과정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내용이지만 구원과 멸망에 대해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구원과 멸망>은 –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사건이요(롬 8:24), 그것이 종국에 가서야 완전히 성취된다는 면에서는 미래의 사건입니다(롬 10:9). 하지만 그것이 복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는 현재적 사건이요, 진행과정의 사건(고전 15:2, 엡 2:5)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과 멸망의 길은 오늘 내가 <십자가의 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멸망하고 있는 자들은> -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미련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을 얻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십자가의 도(道)>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십자가의 도(道)”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 또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 받게 되는 진리>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의 도는 <복음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다르게 표현해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출발은 예수님의 오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요 3:16)

(십자가)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롬 3:25).

(부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고전 15:20).

(재림)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요 5:22).

(믿음, 회개) 이 모든 사역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내용이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방인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가 볼 때에 복음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지금도 자력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종교인들이 복음을 들어보면 너무나 간단해서 미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니다. <십자가의 도>야 말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십자가의 도>가 빠지면 알맹이 없는 쭉정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빠진 사람에게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없는데 거기에 무슨 기쁨과 감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너무 좋아서 십자가를 노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가 쓴 『팬인가, 제자인가』란 책에 보면

십자가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 패배를 상징하던 십자가 – 제자에게는 승리의 상징이라네.

• 죄책감을 상징하던 십자가 – 제자에게는 은혜의 상징이라네.

• 유죄를 상징하던 십자가 – 제자에게는 자유의 상징이라네.

• 고난과 고통을 상징하던 십자가 – 제자에게는 치유와 소망의 상징이라네.

• 죽음을 상징하던 십자가 – 제자에게는 생명의 상징이라네.

• 흉물스러워 보이는 십자가 – 제자에게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네.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오늘 우리도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아서 십자가를 찬양하고 십자가를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예비한 놀라운 축복된 삶이 보장됩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쓰신 『예수님의 사람』이란 책에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3가지를 약속된 삶을 소개했습니다.

 

첫째,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만족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시편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했습니다. 필립 켈러 목사가 쓴 『양과 목자』란 책에서 양들은 생리상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첫째, 두려운 것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자기들 안에 싸움이 없어야 하고,

셋째, 파리나 기생충 등으로 괴롭히는 일이 없어야 하고,

넷째, 배부르게 꼴을 먹어야 바로 눕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는 말씀에는 4가지 조건이 갖춰졌음을 말합니다. 그 조건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지금 부족함이 있으십니까? 이유는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온전히 영접하셔서, 주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여러분을 만족함으로 인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7:37-38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여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은 주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놀라운 은혜를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시험을 만날 때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로마서 8:35-37 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큰 환난과 시험을 당하고, 그 어떤 위협과 고통이 따라온다 할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 말씀을 정리해 보십시다.

바울이 그렇게 확신했던 십자가의 도, 복음의 힘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많은 성도들이 이런 축복된 삶을 살지 못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살아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에는 다니는데,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다고 하는데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시 믿음의 본질로 돌아가십시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 있게 고백한 17절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7절을 큰 소리로 외쳐보십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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