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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WbBAzV2m5sA
본문 로마서 2:1-1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12-22

로마서 2:1-11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

 

오늘 설교 제목은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렴풋이 알고 계시겠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제가 간략하게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

1.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다.(롬 1:16)

-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믿어야 합니다.

-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상을 통치하시다가, 마지막 날 최후심판을 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임마누엘, 재림>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조차도 은혜로 말미암는다.(엡 2:8)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어떤 이들은 예수를 믿고, 어떤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전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옛 본성 그대로 놓아 두셨다면, 우리 중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예수님을 믿도록 하나님께서 (나의 상황, 생각, 감성)을 은혜가운데 인도해주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다.(엡 2:9)

에베소서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4.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의의 길에 세워지고, 그 길을 걸으면서 주변 세상이 꿈조차 꿀 수 없는 선한 일을 실제로 행한다.

네 번째 항목에 다다르면 성도님들의 머리가 조금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네 번째 역시 <기독교의 위대함>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 번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의>는 선행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당시에 최고로 손꼽히던 자칭 의인들(서기관, 바리새인)들을 능가하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위대함은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의의 길에 세워져 있고, 그 길을 걸으면서 주변 세상이 꿈꿀 수 없는 선한 일을 실제로 행해야 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구원의 열차를 타 놓고서는 <주님이 서 계시는 종착지>로 향하지 않고 그 반대로 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실 때 반대방향으로 타신 경험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마 한 두 번씩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가는 종착지 이름도 같고, 버스 번호도 맞는데 타고 가다 보니 <원하는 방향이 아닌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 반대쪽으로 가서 타고 바른 방향으로 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서울에 학교 다닐 때 처음에는 어정쩡해서 그런 실수를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지하철이나 버스는 한 두 정거장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내리면 되는데

<내 인생의 방향을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맞추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다가 그만 거기에서 인생이 끝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청년이 어렵게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일은 그런대로 잘 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성질이 난폭하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별 이유 없이 성질이 나면 자제력을 잃고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집에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청년이 이렇게 성질을 내고 나면 팀장은 그 청년을 앉혀 놓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 형님처럼 타이르면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어, 어떻게든 성질을 죽이고 자제력을 길러, 그래야 회사에 살아남아!>

그런데도 며칠 못가서 또 성질을 내고 물건을 던집니다.

팀장은 또 이야기 합니다. <너 성질 죽여, 이번에는 경고야,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영진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청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팀장은 그 청년을 아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부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면서 몇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했습니다. 부장은 팀장의 말을 듣고 화를 내었습니다. 부장은 그 자리에서 단박에 청년을 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팀장은 부장께 간청을 했습니다. 청년에게 한 번 만 기회를 달라고, 그와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정신을 차리도록 지도해 보겠으니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고를 면했는데 ....청년의 성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부장이 안지 사흘 뒤에, 이 청년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배식 받아서 자리로 가는 가운데 다른 직원과 실수로 부딪히면서 그의 셔츠에 국물이 쏟긴 곳입니다.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식판을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던졌고, 상대방의 배를 걷어 차버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팀장도 손을 들어버렸고,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가 되어서 그 청년은 해고가 된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릴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것입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 믿음마저 은혜로 인해 받은 우리, 그래서 자랑할 것이라고는 없는 우리,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의에 길>에 서서 <주변 사람들이 꿈꿀 수도 없는 선한 일을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 청년처럼 자신의 분에 못 이겨서 교회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세상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을 향하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알려주는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1절 앞부분의 말씀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여기 판단은 헬라어 <크리노>라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판단이 아니라 정죄 혹은 심판>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산상보훈에는 비판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같은 단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남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눈에는 그들보다 큰 들보가 있기 때문이고 들보를 빼내려면 예수님이 수술을 해 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죄를 유대인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범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르고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4가지 죄>를 소개합니다.

1. 남을 판단(비판)하기를 즐김(1절)

문제는 그들이 남을 판단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그들과 똑 같은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은밀한 가운데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2. 자기 죄에 둔감함(1절, 3절)

남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자신도 그런 죄를 지으면서 자신은 그 죄에 대해서 둔하다는 것입니다.

3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

믿음이 얕고 깊음을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믿음이 얕으면 남을 향해서는 민감하고, 자신에게는 둔감하고>

<믿음이 깊으면 남을 향해서는 둔감하고, 자신에게는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계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율법에는 음행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며 말씀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다가, 그들이 자꾸 독촉하니 일어서서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에 한 사람 한 사람 떠났고, 마지막에는 여자와 예수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주셨고,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둔감하면서 남에 죄에 대해서는 민감합니다. 지금 유대인들과,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그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자기의 선을 자랑함(4절)

지금 자신들의 형통이나 행복이 자기가 선해서 얻은 복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아서 그렇다 것입니다.

4절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의 <인자, 용납, 인내>의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이 참으시니까 지금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선해서 이런 복을 받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자기 선의 무가치함을 알지 못함(7절)

자기의 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대체로 이런 사람들이었지요. “그래도 나는 남보다 선해! 남보다 의로워!”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선은 무엇입니까?

7절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으로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여기에서 “참고 선을 행하며” 라는 말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리 해보십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4가지 죄를 지적했습니다.

① 남을 판단(비판)하기를 즐김(1절)

② 자기 죄에 둔감함(1절, 3절)

③ 자기의 선을 자랑함(4절)

④ 자기 선의 무가치함을 알지 못함(7절)

 

이런 죄를 짓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2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절 b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5절 b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마지막 날 심판을 받는 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삶의 결과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심판에 대해 말씀한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안내합니다.

그것이 6-11절에 나옵니다.

6-11절은 깔끔한 교차대구적 구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형식을 <키아즘(대칭) 구조>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성경의 눈이 열려 있다고 봅니다. 표를 보고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6-11절의 대칭구조>

A.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를 따라 갚으심(6절)

  B. 선을 행하는 이에게 영생으로 갚으심(7절)

    C. 악을 행하는 이에게는 진노로 갚으심(8절)

    C′. 악을 행하는 이에게는 파멸(9절)

  B′. 선을 행하는 이에게는 영광(10절)

A′.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으심(11절)

 

바울은 유대인들이 당시 즐겨 사용하는 <키아즘(대칭)>구조로 통해서

세 가지를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보신다.

둘째, 선을 행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선물 받고, 천국에서는 <영생>을 상급으로 받는다.

셋째, 악을 행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환난, 곤고>를 당하고,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받게 된다.

 

바울이 지금 이렇게 말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유대인에게, 자칭 교회 안에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른 삶을 선택할 것을 권고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금 회개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전환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고가>를 하듯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인사고가표>로 평가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사고가[人事考課] “조직에 대한 성원의 업무 수행 성적과 능력, 태도를 평가하고 기록하는 일” 이란 뜻입니다.

인사고가를 알기 위해 점검표가 있습니다.

 

<그림 자료1. 인사고가표 샘플>
<사원은 사원대로, 간부는 간부대로 고가표가 따로 있습니다.>

인사고가평가표에 보편적으로 평가하는 항목에는

<책임감 및 적극성 / 업무 지식 및 수행능력 / 기획 창의력

/ 업무 실천 및 규정 준수 / 고객 대응 및 영업력> 등이 있습니다.

이 인사고가표의 결과로 승진이 될 수 있고 해고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사원이 회사에서 나를 평가한다고 하면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회사에 종속된 사람이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들도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의 삶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저 성도는 주님이 부르신 목적대로 잘 살고 있는가?>를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 목적이 있겠지요.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5가지의 목적을 소개합니다.

첫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두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세번째 목적 :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네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다섯번째 목적 :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이런 목적을 바로 알고 바르게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보시고 잘 살았다고 칭찬하시며

이 땅에서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의 복을 주시고, 천국에서는 영생의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대림절 4번째 주일 <우리의 신앙을 잘 점검하시고, 바르게 사심으로> 이 땅에서부터 주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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