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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dey5KmR6Qhw
본문 베드로전서 1:22-2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0-01-12

베드로전서 1:22-2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 말씀과 사랑

 

성도님들은 일주일 중에 가장 힘든 날이 언제입니까? <직장인의 경우에는 월요일이 힘들다고 하지요.>

그럼 목사인 제가 일주일 중에 가장 힘든 날이 언제일 것 같습니까?
<월요일 – 주일>중에 가장 힘든 날은 <바로 오늘 주일입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예배를 인도해야 하고, 설교를 해야 하고, 또 여러 회의를 진행하기에 주일은 한 주일 가운데 가장 피곤한 날입니다. 그렇기에 교역자들은 월요일 하루를 쉬면서 충전을 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인 제가 일주일 중에 가장 설레는 날,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언제일까요? 역시 <주일>입니다.

이유는 주일예배로 통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주일에 설교를 하고 나면 성도님들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제 사정을 정확하게 아시고 저를 위한 말씀을 주셨습니까?

목사님 제가 주 중에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시원하게 답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300백 명이 넘는 성도들의 상황을 일일이 알 것이며, 제가 어떻게 성도님들의 마음의 고민을 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정성을 다해 준비한 말씀이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고, 그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하고, 상처가 치유되고, 문제가 풀려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목회자는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바로 주일에 일어나기에> 주일은 일주일 중에 가장 설레는 날, 가장 멋진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강단에 섰습니다.

특히 오늘 2부 예배는 <제직헌신예배>를 드리기에, 오늘 이 말씀이 제직들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미국에 목회하셨던 도널드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목사님은 자신이 설교를 할 때 청중석을 보면 많은 드럼통이 장의자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속이 텅 빈 통이지만, 개 중에는 속이 화약으로 채워진 통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하는 일은 말씀의 성냥불을 화약으로 가득 채워진 통에 던져 넣음으로써 그 통이 폭발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통에 화약을 집어넣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통에 목사님이 말씀의 불을 붙여 통에 넣었을 때, <화약 통>이 폭발하게 되고, 그럼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태우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제직들이 <화약이 들어있는 드럼 통 같은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의 불이 그 통 속에 들어감으로 <복음의 화약이 터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제직헌신예배를 드리면서 본문 말씀으로 <베드로전서>를 선택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1장 1절에 말씀하고 있는 대로 <베드로 사도가 로마치하 온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 입니다.

초대교회 신앙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지 못하고 흩어진 이유는 한 마디로 <핍박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산헤드린 공회가 박해했고, 정치하던 헤롯왕이 박해를 했습니다.

로마치하에서는 무시무시한 <네로 황제>가 박해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평안하게 박해라고 말을 하지만, 주후 64년경 베드로사도가 쓴 이 편지를 받았던 성도들은 신앙생활이 곧 죽음과 연결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박해와 시련을 베드로사도는 언급하면서

지금 당하는 시련과 박해가 꼭 나쁜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청교도 신앙과 신학을 대표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쓰신 <신앙감정론>이란 유명한 책이 있는데 그 책 내용 중에

<시련이 참된 신앙에 주는 3가지 유익>을 소개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시련, 박해, 어려움이 참된 신앙에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까요?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① 시련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드러낸다.

마치 금처럼 보이는 물질이 불 속에서 단련되면 그것이 참된 금인지 아닌지가 밝혀지는 것처럼, 시련은 신앙고백의 믿음과 종교가 어떠한지를 시험하고 구별해 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7절에 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지금 베드로 사도는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입증해 줍니다. 그들이 불같은 연단을 받았는데, 믿음이 더욱 빛나고 있기에 결국은 <주님이 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주후 64년의 시련이 온다면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일제강점기 말에 불어 닥친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가하면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나름 시험을 받았느니? 힘들다느니? 하는 것은 대부분은 자기를 죽이지 못해서 오는 결과임을 봅니다. 그런 자에게 진짜 시련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시련을 겪더라도 참된 믿음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② 시련은 신앙의 참된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다니엘의 신앙,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 욥의 신앙, 바울의 신앙, 베드로의 신앙이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우리가 말하는 이유는? 그들 모두 시련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그들의 영적인 탁월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련이 주는 유익입니다.

 

③ 시련은 신앙을 순화시키고 강하게 해 줍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아파가면서 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는 것처럼, 신앙인들도 시련을 통해서 불순물들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변하되고, 시련을 통해서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신앙인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나단 에드워즈는 시련이 <참된 신앙에 3가지 유익>을 준다고 정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련이 주는 유익을 통과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한 편으로는 <지금도 그 시련을 통과중인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많은 말씀 중에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오늘 설교제목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 말씀과 사랑>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지금 우리에게>라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많이 나태한 우리에게”라는 말의 의미도 있고,

“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직분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우리에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참 영성, 참 믿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가진 지금 우리에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요>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직분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에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련과 시험 속에서 인내하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지금 우리에게”라는 의미 도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베드로사도처럼, 바울사도처럼 발버둥치는 지금 우리에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직들에게는 이런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요. 적용은 여러분의 자신의 신앙에 맞춰서 스스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는 : 말씀과 사랑>입니다.

 

Ⅰ. <말씀>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23-25절이 말씀에 대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본문 23절에서 말씀하는 <씨>를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님은

<임신을 가능케 하는 남성의 정자>를 뜻한 다고 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해서 <임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조명연신부의 에세이 <나보란 듯 사는 삶>이란 책에 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가운데 실패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실패한 사람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했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못했고, 돈을 버는데도 재주가 없어서 나는 요 모양 요 꼴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학교에 다닐 때 반에서 1등하지 못했고, 학년에서 1등하지 못했고, 전국에서 1등하지 못했어도 ...

여러분은 3억분의 1의 경쟁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 명 정도 볼 때, 우리나라 보다 6배가 많은 나라에서 여러분은 일등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남자가 한 번 사정할 때 정자의 수가 약 3억 개가 된다고 하는데 ....그 3억 개 중 유일하게 하나만 난자에 도착해서 수정함으로 오늘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은 3억에서 1등을 차지한 자들인 것입니다. 대단하지요.

 

본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십시다.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려면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결합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의 영적인 출생도 그와 마찬가지임을 말씀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믿음이라는 난자를 사람의 마음에 심으십니다.

믿음조차 우리 자신에게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믿음 역시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 에 사도바울이 잘 설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쉽게 표현하면 <믿음이란 난자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심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적 생식에서 씨앗이 되는 살아 있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취하시면, 이 말씀이 설교를 통해 귀라고 하는 문을 통해 사람에게로 들어가서 믿음이라는 난자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난자와 말씀의 정자가 만나면 생명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의 난자, 말씀의 정자가 만나서 새 생명이 잉태되면,

그 생명은 속에서부터 자라기 시작합니다.

임신했을 때, 어느 시점까지는 본인도 임신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생명이 잉태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타나납니다.

- 영적인 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입맛이 당기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합니다.

-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 설교 말씀이 나를 위하여 준비된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렇게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말씀의 화약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면 그야 말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에게 있어서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사도는 말씀을 정리하기를

<말씀은 복음이다. / 말씀은 곧 그리스도자신 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말씀은 <로고스>라고 합니다.

로고스 : <성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 25절에 말씀하는 <주의 말씀>은 <레마>라고 합니다.

레마 : <로고스가 음성이나 글로 표현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레마는 로고스보다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설교가? <레마 입니다.>

 

그럼 선포되는 설교가 레마의 말씀으로 온전한 역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교자 준비사항

1. 거듭난 설교자라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성경에 순종하는 자라야 합니다.

 

회중 준비사항

1. 회중도 거듭나야 하고, 거듭나고 싶어져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성경에 순종하는 자라야 합니다.

이런 설교자, 이런 회중이 모인 곳에는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언제라도 좋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대부흥운동이 있었을 때>는

현대교회처럼 <좋은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체계적인 조직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믿고 갈망한 성도들과,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거의 미치다 시피 한 목회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역사가 있는 곳에, 말씀의 화약을 담고 있는 성도들이 가슴에 복음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서리집사님 여러분!

금년 한 해 ... 여러분들은 다른 곳에 집중하지 마시고 그 옛날 베다니에서 주님의 발 앞에 말씀을 듣는 일에 미쳤던 마리아처럼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미국에 목회하셨던 도널드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목사님이 설교 할 때 보였던 장의자에 놓여 있는 빈 드럼통이 아니라, 말씀의 화약이 가득 찬 제직들이 되셔서 주일 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여러분의 귀로 말씀이 들어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믿음이란 난자에 말씀이 착상되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의 불만 제대로 붙는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은 자동적으로 잘 감당할 것입니다.

 

Ⅱ.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22절에서 그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 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사도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분석하면 그 사랑도 두 가지로 강조하는데

① 거짓 없이 사랑하라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마치 배우가 연기하듯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②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라는 말의 의미는 <쉬지 않고, 열심으로>라는 뜻입니다. 성도 간에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세를 지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정의하고> 예수님은 성목요일 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심을 잘 알면서 .... 정작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들어가 보면 <사랑이 식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직에게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입술로든 마음으로든 대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진짜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목회자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우리교회를 항한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가족을 향한 참된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교우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감사합니다. <대답을 확실하지 못하는 분들은 주님께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고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두 번째 주일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 말씀과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꼭 가슴에 품고 회복하셔서 진짜 제직다운 제직, 성도다운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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