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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rH_oErzasps
본문 열왕기하 2:1-14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0-05-31

열왕기하 2:1-14 성령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

 

오늘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글 하나를 소개함으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이 말씀에 여러분은 공감하십니까?

지금 사회는 어떤 분야든 사람들이 넘칩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을 구하면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정치권도, 일반직장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목사가 많지만 정작 교회에서 청빙하려고 하면 청빙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많지만 직분자를 뽑으려고 하면 해당자가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고>

<인물이 되려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께서 쓰시는 인물이 되려고 힘씁니까?

여러분은 좀 더 낳은 신앙인이 되려고 공부하고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엘리야의 뒤를 이어 리더십이 엘리사에게 승계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어떤 인물입니까?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했던 아합왕의 통치 시대에 선지자로서 힘든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8에 나오는 바알 선지자의 불의 대결,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비를 내리는 말씀은 읽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가끔 찬양대가 그 내용으로 만든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곡으로 찬양하지요.

갈멜산에서 쌓은 번제물을 / 불로써 태워 버린 여호와여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마지막 부분으로 가서)

주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아 ~ 멘

 

이렇게 놀라운 사명을 감당한 엘리야를

하나님은 이제 그때가 다했음으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방법은 보통 사람처럼 <생로병사>의 길이 아닌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날려 올리는 아주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방법을 택하셨는지 모릅니다. 그저 성경의 흐름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위해 오직 한 길을 걸었던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감람산에서 구름을 태워서 하늘로 모시고 갔습니다.

성경은 이것으로 말씀을 맺지 않으십니까? 데살로니가전서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데려갈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말씀입니다. 들어보세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으로 살아있는 채 하늘로 올리고자 하는 이 사건은 단지 엘리야 한 사람만을 위함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이 되고, 주님의 재림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까를 알려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엘리야는 이 땅에서 자신의 때가 다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데리고 간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것은 이성이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기를 앞두고 이런 거룩한 직감이 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성에게는 여성만 가지는 촉이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성의 사람에게는 영성가 만이 가지는 거룩한 직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을 읽어보면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사실은 엘리야도 알고 있었고, 그 뒤를 이을 엘리사도 알고 있었고, 벧엘과 여리고에 있었던 선지 생도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공통된 직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에게는 이 땅에서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면 죽기 전에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장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한다고 합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도 하셨지만, <선지 학교를 여러 곳에 세워 차세대 영적 지도자를 기르는 일도 했습니다.>

그 선지 학교가 <벧엘>과 <여리고>에 있었습니다.

벧엘과 여리고는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남 유다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려고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엘리야는 특별히 그곳에 선지 학교를 세우고 차세대 영적 지도자를 기른 것입니다.

이제 하늘로 부름을 받기 전 그곳에 가서 선지 생도들을 둘러 보고, 하늘나라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남은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고, 하나님을 곧 만나야 기전 자신을 돌아볼 엄숙한 시간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요하게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했습니다.

온 맘 다해 (With All My Heart) 라는 찬양 아시지요.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나이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고요한 시간 주님과만 함께 하고 싶었고, 주님께만 온 마음을 쏟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런 엘리야의 속도 모른 채 함께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걸었던 길을 <지도>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료 1. 승천 직전 엘리야의 순회 경로>

길갈 → 벧엘 → 여리고 → 요단강

 

여러분이 오해하기 쉬운 장소는 <길갈>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길갈이 두 곳 있습니다. <여리고 아래쪽 있는 길갈>과 <산지에 있는 길갈>인데, 여행길의 출발점은 산지 길갈입니다.

 

길갈에서 출발하면서 둘이 나눈 대화한 내용이 2절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의 <너는 여기 머물라>는 말씀과

엘리사의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 말씀은 본문에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길갈에서(2절), 벧엘에서(4절), 여리고에서(6절) 반복됩니다.

 

룻기에 나오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과 대화와 비슷합니다.

룻이 남편 아들 둘을 잃고 룻에게 <너의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했을 때 룻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기 1:16-17)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특징을 아셨습니까?

룻을 왜 쓰셨습니까? 엘리사를 왜 쓰셨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모시고 있던 분에게 배울 것이 많아서 그분을 죽음이 갈라놓지 않는 이상 따르겠다며 진드기처럼 따라붙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선지 생도>들도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엘리야를 따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진드기처럼 따르려고 했던 자는 엘리사 한 사람 뿐입니다.

여기서 신앙인 교훈 하나를 발견합니다.

영적 지식이 반드시 영적 행동을 낳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의 승천이 가까움을 알았지만, 그들은 제삼자의 관점에서 멀찍이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의 예절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엘리야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쿨’(cool)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답게 엘리야의 승천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스승 엘리야를 끝까지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직접 보고 스승과 운명을 함께 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을 <집념>이라 할 수 있고, 엘리야 입장에서 보면 <진드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영적 지식을 영적 행동으로 옮긴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바울 — 모두 영적 지식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오순절 성경 강림을 체험했던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120명의 성도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성령님이 오신다는 <영적 지식>을 알고, <열흘 동안 기도함으로 영적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 지식, 성경 지식이 부족합니까? 아닙니다. 진짜 부족한 것은 <영적 행함의 부족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기도하면 성령을 받는다. /알아요 /하지만 행동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의 예배자를 찾는다/ 알아요/ 하지만 행동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은 영적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도 엘리사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 중 클라이맥스(최고조) 부분을 생각해 봅시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여리고에 들려서 선지 생도를 만난 후,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직접 말씀을 읽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8~9절이지요.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 요단강을 쳤니 강물이 이리저리 갈라졌고 요단강 바닥 마른 땅을 건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단강은 헬몬산에서 터져 나온 샘들이 모여 이루어진 강으로, 남북의 길이만 약 250km나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강이라고 함은 수량과 강폭과 관계없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흐르면 강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3번이나 요단강이 세 번 갈라졌다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가 출애굽 한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두 번째 세 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요단을 건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구하라고 했습니다.

길갈에서부터 지금까지 진드기처럼 따라붙은 것을 보면 뭔가 소원하는 것이 있을 테니 그것을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가슴속에 있던 말을 토해냅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절)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는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엘리야에게 부어 주었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영광, 거룩한 리더십의 능력,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스승과 비교하면 자신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기에 늘 간절한 소망이 <스승님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나도 가지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는 표현은 엘리야보다 갑절이나 뛰어난 영적 능력을 갖추고 2배의 영광을 누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갑절을 달라는 말씀은 신명기 21:17 절에 나오는 장자의 몫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엘리사의 요구는 이런 내용입니다.

‘그 힘든 시절 스승님의 사역을 제가 봤습니다. 이제 바통이 제게 넘어오려고 하는데 저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선생님의 제자들이 <벧엘과, 여리고>에도 있지만, 저에게 영적 장자의 복을 주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그 말을 듣고 <어려운 일을 구한다> 하시면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네가 본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불수레와 불말들이 내려와서 엘리사와 엘리야를 갈라놓았고,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에 들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는 스승과 이별한 한 슬픔을 옷을 찢음으로 표현했고, 엘리야가 떨어트려 준 겉옷으로 요단강을 쳐서 건너는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간구에서 신앙적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온다고 똑같은 은혜, 똑같은 축복 받는게 아니다.

 

무슨 말입니까? 선지 생도라고 다 같이 장자의 몫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엘리사처럼 간절함이 있는 자가 받았습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주님을 만졌지만 정작 주님의 능력을 끌어낸 것은 열두 해 혈우병으로 앓던 여인의 터치 하나뿐이었습니다. <간절함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령강림을 체험한 120명의 성도 모두 간절함이 있었기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봅시다. 지금 우리가 왜 신앙적인 체험을 하지 못합니까? 왜 시간시간 은혜를 받지 못할까요? <간절함>의 부족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무리 역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여러분이 엘리사처럼 성령의 역사를 이을 바통을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엘리야처럼 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섬기면 안 되겠습니까?

성령강림 주일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성령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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