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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xqUnZ9NUsd8
본문 로마서 5:12-2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0-08-09

로마서 5:12-21 놀라우신 주의 은혜

 

미국 댈러스 세미한교회 최병락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다섯 살 때였다고 합니다. 목회하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활발해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내외분이 힘들자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아이들이 빨리 커서 아내와 둘이 자유롭게 목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구역 심방을 갔습니다. 모인 집에는 방도 많았고 거실도 세 개나 되는 큰 집이었습니다. 목사님이 1층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동안 아이들은 2층에 준비된 미디어 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성도와 담소를 나누는데, 갑자기 2층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놀라서 뛰어 올라갔는데 미디어 방에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아이들은 큰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게임용 장총으로 목표물을 맞히는 전자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없었던 집주인이 아무 생각 없이 사슴을 잡은 진짜 총을 장전한 채 게임용 총 옆에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아이들의 눈에는 게임용 총과 진짜 총이 똑같아 보였고, 네 살 된 한 아이가 총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장난감 총을 들고 있는 다섯 살 난 목사님의 아들을 향해 “손들어! 쏜다”하고 총을 겨누었습니다.

장난기 많은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쏴! 쏴!”라고 했고, 그 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 순간 집 안을 가르는 총성이 들렸고 방안은 연기로 자욱해졌습니다.

놀란 아이는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네 살짜리 아이라 다행히 힘이 약해서 총을 쏜 반동으로 총구가 흔들렸고, 총알이 아들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도 약 스무 발에 가까운 산탄총이었는데, 그중에 한 발도 맞지 않았습니다. 총성을 듣고 목사님이 방에 도착했을 때 총을 쏜 아이는 놀라서 서 있었고, 아들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 죽을 뻔했었어, 귀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어.”

총알은 벽을 뚫고 나가 다른 방 가구에 스무 발 모두 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임을 느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영광아! 살아줘서 고마워.”

그 순간 그때까지 가졌던 아들에 대한 모든 기대가 욕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큰 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사모님은 은행에 있는 전 재산을 찾아와 감사헌금 봉투에 넣고 이렇게 써서 헌금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연이와 영광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것이면 충분 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 아이들 모두 죽을 뻔했는데 다치지 않고 살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최 목사님의 아이 <하연이, 영광이>가 바로 우리 모두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우들에게 <이신칭의 받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5장 말씀으로 전한 두 번의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1-5절 말씀으로 <칭의 받은 자의 특권 3가지>를 말씀드렸지요.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1절)

둘째, 은혜의 보좌로 나아간다. (2절 a)

셋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2절 b)

 

6-11절 말씀으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지요.

우리가 행복을 제대로 느끼려면 <예수님을 믿기 전 나의 상태를 바로 알고, 그 상태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희생으로 어떤 복을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에 있는 대로

<우리의 예수님을 믿기 전 상태>는

① 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

② 경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경건한 존재>

③ 하나님의 표준에 맞지 않는 <죄인이었던 존재>

④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님과 원수였던 존재>가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확실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연약하고, 불경건하고, 죄인이었고, 원수였던’ 나의 죄를 대신 십자가를 지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로 우리는 죄와 죽음과 슬픔에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만 제대로 알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임을 믿습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다른 것이 더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말씀을 전개하던 바울은 슬그머니 우리를 얽메게 한 죄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예수님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구절은 12절과 18절 말씀입니다.

중요한 구절이니 함께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한 사람은 <아담>을 말합니다.

 

18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 말씀 중에 ‘한 범죄’는 <아담>을 가리키고,

뒤에서 말씀하는 ‘한 의로운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아담이 지은 원죄를 / 예수님이 어떻게 해결해 주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죄, 죽음 문제는 쉬운 문제인 것 같지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지금도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세상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 1. 이병철 회장 사진>

그중 대표적인 인물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11월 1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자신의 상식과 지식, 철학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24가지 질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회장이 말로 하면 비서가 깔끔하게 한글과 한문으로 받아적었습니다.

받아적은 24개 질문지, A5용지 다섯 쪽짜리 질문지가 서울 마포구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에게 보내졌습니다> 박희봉 신부는 그 질문지 내용을 읽어보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가톨릭대 정의채 교수(신부)에게 전달합니다. 정의채 교수는 24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정리하여 이병철 회장과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궁금해 한 24개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24가지 질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

이 회장이 던진 24가지 질문을 보면 아주 중요하고, 근원적인 질문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죽음 직전에 남긴 질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문제를 살아생전에 해결하고 예수 님을 영접하고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 하는 마음이 듭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로마서를 통해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질문하지 않았는데 사도바울은 당시 로마 교인들과 지금 우리가 궁금해하는 <원죄 문제, 죽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주일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병철 회장의 고민을 해결하고, 건강하고 젊을 때부터 <죄, 죽음, 슬픔> 문제는 물론이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믿음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문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린 <12절, 18절>을 중심으로 해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본문을 개인적으로 읽을 때 <대조하면서 읽어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1. 아담은 <피조물>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 참 사람>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사람으로 흙으로 지음을 받고,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사람이 되었지요.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2위로서 <천지창조 사역도 성부와 함께하셨으며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참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2. 아담은 <불순종>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다음에 그를 에덴동산 가운데 부르시고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으로 먹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 17)

 

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처럼 준엄한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합니까? 피조물의 위치가 창조자에 비해 무엇이 다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신분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사람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임을 알게 하는데 그 명령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은 하나님의 그 준엄한 명령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자기 아내와 함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제2위의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내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하나만 해도 예수님의 순종의 깊이를 알게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기까지 순종합니다.

 

3. 아담으로 <죄와 죽음이> 들어왔고, 예수님으로 <의와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자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을 내립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 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이 말씀은 죽음의 선고입니다.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 중에는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아담이 살았던 시대에 살지 않았기에, 아담의 죄와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주장하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1, 2개월밖에 안 된 아이들도 죽습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아이가 부모와 이웃에게 어떤 죄도 짓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해도 지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죽는 이유는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 6:13)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지은 죄를 우리는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 :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장로교 창시자 칼뱅은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은 불신앙 즉 교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아담이 지은 죄로 <어린아이도 죽고, 어른들도 죽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를 괴롭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영향력를 생각해 보십시오.

중국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발생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금요일(8월 7일) 통계로 보니 전 세계 218개국에 확진 환자 1,907만 4천 명, 사망자 714,439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일이니 훨씬 더 불어났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에 퍼져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지은 죄의 바이러스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상상되지요? 아담의 죄로 전 인류는 죽게 된 것입니다. 돈 많다는 이병철 회장도 죽고, 어린아이들도 죽고,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잔다”고 묘사합니다. 우리 모두 저녁이 되면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면서 무슨 걱정을 합니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룻밤 잠을 잘 자면 더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가 얻은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이제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아담

예수 그리스도

피조물

참 하나님, 참사람

불순종

순종

죄와 죽음 들어옴

의와 생명이 들어옴

이런 차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성도님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전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 과학과 교육과 관련 있는 집사님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신학자 해리슨의 말씀 때문입니다.

신학자 해리슨(Harrison)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담의 죄를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치 한 방울의 독이 물그릇에 떨어졌을 때 온 물이 유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아담의 죄로 온 인류가 죄에 오염이 되었고, 결국 그 책임을 함께 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그냥 보고 계시지 않으시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 모두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눈으로 보시도록 제가 실험도구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죄를 상징하는 검은 물 – 비이커 안의 모든 물이 검게 변한다.

피를 상징하는 불은 물 – 비이커 안의 검은 물이 투명하게 변한다.

 

어떻습니까? 믿어지십니까? 완벽한 설명은 되지 못하지만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는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내가 예수 믿고 <의와 영생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설교 후 찬송 305장을 부를 때 이 감격으로 불러봅시다.

둘째는,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아담 한 사람, 예수님 한 분이 중요하듯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정이 죽을 수도 있고, 살아갈 수도 있고, / 교회가 쇠퇴할 수도 있고, 교회가 부흥할 수도 있고, / 직장과 국가가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로서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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