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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oyNEZuxZpQY
본문 열왕기상 19:1~18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0-09-06

열왕기상 19: 1-18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주일예배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간은 성경을 봉독하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주석을 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러니 <성경 봉독>이 가장 중요하고, <설교>가 그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성경 봉독>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봉독한 열왕기상 19장 1-18절 말씀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엘리야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동안 알고 있는 엘리야는

- “내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예언자로서 당당했습니다.

- 아합왕에게 <바알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겠다>고 예언했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왕상 17:1)

- 3년이 지난 후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에서는 그들이 내리지 못한 불을 기도함으로 내려> 승리합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기손 시내로 데려가 거기서 죽입니다.

- 그 후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기도하자 3년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에서 불과, 비를 내릴 수 있었던 자였습니다.>

<엘리야는 한 마디로 예언자 중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엘리야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 빠진 풍성처럼, 펑크 난 타이어처럼 /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은/ 예언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세벨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죽은 바알 선지자처럼, 내일 너도 그렇게 만들어 줄게!!”

 

바알 선지자를 죽이는 그 역사적인 날, 이세벨이 사신을 보내 <“너도 / 오늘 죽은 바알 선지자처럼 내일 만들어 줄게!!”>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엘리야에게 가득 차 있었던 성령의 바람이 빠졌습니다. 능력의 바람이 빠졌습니다. 권능의 바람이 빠졌습니다. 기도의 바람이 빠졌습니다.

바람이 빠지자 엘리야는 허겁지겁 능력을 행한 <이스르엘 평지>를 떠납니다.

북 이스라엘 떠나, 남 유다로 최 남단 브엘세바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하룻길 더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 영과 육이 탈진되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스르엘에서 - 유다 최남단 브엘세바까지는 약 193km입니다.(무디성경주석)

예언자 중의 예언자 엘리야가 – 자신의 목숨 하나 부여하려고 193km를 도망치듯 내려와 로뎀 나무 아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엘리야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엘리야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탈진한 엘리야를 회복시켜줍니다.

천사가 자는 엘리야를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고는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떡과 물을 먹고 마신 후 엘리야는 다시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천사는 엘리야를 다시 깨워서 또 <떡과 물을 주고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동안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도피해 있을 때는 – 하나님이 까마귀를 동원해서 떡과 고기를 주셨습니다. (왕상 17:6)

시돈 땅으로 도피해 있을 때는 - 사르밧 과부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왕상 17:8-24)

 

※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엘리야가 영적 탈진, 정서적 우울증,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시고, 엘리야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천사를 동원하여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엘리야가 겪었던 이런 경험들을 가끔 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몸도 피곤하고, 영적으로 침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지금 힘듭니다. 위로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기도한 그 날 <성도 중에서 전화나 문자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 제가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신비하고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 도움을 받고서 하나님이 저를 돌보신다는 확신이 갖고 힘을 내어서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돌보아주시는 체험을 여러분들도 경험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천사가 되어 힘든 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 봅시다.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엘리야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8절을 보세요.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남쪽으로 약 402km를 걸어서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시내산, 호렙산>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합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장로님, 집사님 시내산과 호렙산은 같은 산입니까? 다른 산입니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 예 제가 안 가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까?

 

제가 오늘 정리해 드릴 테니 메모하시면서 잘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설악산 – 대청봉>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넓은 설악산 가운데 가장 가운데 주봉(산정상)을 우리는 대청봉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내 산 호렙산도 그렇게 보면 됩니다.

1. 시내산 : 산악지대 전체>

호렙산 : 산 정상> / 박준서 교수(연세대)의 주장

 

2. 시내산 : 남 유다 왕국 전승

호렙산 : 북 이스라엘 왕국 전승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산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는 백두산, 중국은 그 산을 장백산으로 부르지요)

 

3. 시내산은 : 역사적, 지리적 명칭

호렙산은 : 정신적, 이념적 명칭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장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부여받을 때도 <하나님의 산 ‘호렙’(출 3:1)>이라고 했고,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오경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이 바로 ‘호렙’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에서는 33장 2절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서 시내산을 줄곧 ‘호렙’이라고 말합니다.)

 

자 정리가 되셨지요.

그러니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서 “호렙산”이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일을 시작되는구나! 어떤 일이 시작되지?> 라는 생각으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도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습니다. (8절)

그 후 어떤 일이었을까요?

9절을 보세요.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여기에서 먼저 살펴보셔야 할 것은 “그 곳 굴에”라는 말입니다.

“그 곳 굴에”라는 말에는 엘리야가 머물렀던 굴이 보통 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학자들은 이 굴을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머물렀던 “반석 틈”으로 봅니다.(출 33:22)> 과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곳에, / 위대한 신앙의 선배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장소에 엘리야가 <자신의 삶과 새로운 사역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왔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 굴에서 있었던 <하나님과 엘리야와의 대화 내용을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보시면 <하나님과 엘리야의 대화가 두 번에 걸쳐서 나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두 번 반복됩니다.>

 

전반부 - 첫 번째 대화(19:9-12)

① 엘리야가 있는 곳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9절)

② 하나님의 질문에 탄식으로 대답하는 엘리야 (10절)

③ 하나님의 응답 (11-12)

“밖으로 나가서 서라” (11절 전반절)

하나님의 나타나심 : ‘작고 여린 소리’에서 (11절 후반절–12절)

 

2. 후반부 : 두 번째 대화(19:13-18)

① 엘리야가 있는 곳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2 (13절)

② 하나님의 질문에 탄식으로 대답하는 엘리야2 (14절)

③ 하나님의 응답 (15-18절)

“가라 그리고 기름을 부어” (15-17절)

“내가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18절)

 

본문은 이 <이중적 구조>만 알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말씀에서 3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찾아와 주시고, 응답하십니다.

9절과 13절 말씀은 내용이 비슷합니다.

9절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13절 하반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에서

오늘 설교 제목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를 정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왜 북이스라엘에서 열심히 사역해야 할 네가? 지금 호렙산 이 굴에 와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탄식하며 대답합니다.> (10절, 14절) 두 번 똑같이 대답합니다.

10절을 보세요.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메시지 역>으로 이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들어보세요.

<엘리야가 말했다. “저는 마음을 다해 만군의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언약을 버린 채, 예배 처소를 부수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저만 홀로 남았는데, 이제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엘리야의 말은 저는 최선을 다해 사역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과 이세벨의 목숨의 위험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하신 이 말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질문을 여러분에게 초점을 맞춰보십시오.

“○○○야 주일인데 네가 어찌하여 집에 있느냐?”

“○○○야 네 직분이 무엇인데 직분과 사명은 감당하지 않고 여기 있느냐?”

물으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첫 번째 대화에서 하나의 사명을 주십니다.

 

11절 상반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굴 안에 있지 말고, 굴 밖으로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서라”는 말은 / 공간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하게 --앞에 서는 것 / --을 섬긴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다시 서라>는 말입니다. 예언자로 다시 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가 섰더니 하나님이 지나가시는 데 마지막으로 <세미한 음성>으로

(원문 : 속삭이는 소리)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놀라운 자연적인 현상(불, 구름, 바람, 지진, 천둥, 번개 등)을 경험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과 이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된 말씀, 선포되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15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사역현장이니 사역현장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 사역의 자리가 ‘갈등’이 있고, 문제가 가득하지만, 때로는 위험하지만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하사엘(다메섹 왕) / 예후(이스라엘 왕) / 엘리사(후계자)>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 사역의 현장은 문제가 잇는 바로 그 곳 /내 삶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에서 동영상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거기가 아닙니다. 물론 가정에서 -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일예배를 드릴 장소는 아닙니다.

내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곳은 – 정동교회 예배실입니다.

내가 사역해야 할 곳은 – 정동교회 공동체입니다.

내가 사역해야 할 곳은 – 세상사람들이 비난하는 일터와 직장입니다.

그곳에 있는 것이 힘들어도, 핍박이 와도, 기교인 임이 부끄러워도…. 우리의 삶의 자리로 빨리 돌아가 주님께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18절을 보세요.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 바로 서 있는 자가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너 혼자 아니야? 지금 <이스라엘에 칠 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라고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칠 천”이란 숫자는 문자 그대로 ‘칠 천’의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를 지속하기 위하여 충분한 ‘충분 수’ 또는 ‘완전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엘리야도 알고 있는 <오바댜가 오십 명 오십 명씩, 굴에 숨긴 100명의 선지자도 있었고, 숨어 있었던 주의 종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기독교가 희망이 없어 보이십니까?

모든 목회자가 부패한 것 같습니까?

모든 중직자들과 성도들이 부패한 것 같습니까?

아니에요. 지금도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목회자와 성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정동교회 모든 성도가 이 시대의 남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영 육이 탈진해 지쳐있는 로뎀 나무 아래입니까?

호렙산에 있는 굴입니까?

아니면, 사역현장입니까?

어디든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이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나셔서,

주님 앞에서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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