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14-25 영이 살아있는 성도의 고민
그리스도인에게는 3대 적(敵)이 있습니다. 3대 적은 마귀, 세상, 육신(죄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 <마귀와 세상과 육신(죄성, 옛 습성)>의 유혹을 이겨내고 완벽하게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그림 자료 1. 장 레옹 제롬, <시내산 위의 모세>, 1895-1900≫
출애굽의 주역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출애굽 후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해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 위에 연기와 불로 임재하셨습니다. 모세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40일을 있었습니다. 40일 동안 하나님을 대면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40일이 지나, 모세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두 돌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우는 소리인지, 노랫소린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알아보았더니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신이라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모세는 ‘욱’하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습니다. 혈기가 끓어 올랐던 것입니다. 모세는 40주야를 하나님과 대면하고 받은 그 귀한 십계명 두 돌판을 <산 아래에 던져 깨드려 버립니다.>
여러분! 산 위에 머물러 있던 모세의 모습이 진짜입니까?
아니면 혈기가 올라 두 돌판을 깨뜨린 것이 모세의 진짜 모습입니까?
≪그림 자료 2. <다윗과 골리앗>≫
새벽기도회 때 생각하고 있는 다윗도 생각해 보세요.
베들레헴 출신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 지금으로 말하면 <흙수저>인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답게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다윗이 17살 때 골리앗에게 한 말씀은 유명하지요.
사무엘상 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삼상 17:47)이라 선언하며 물맷돌로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춰 쓰러트리고 블레셋과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그 이후 10년 동안 피난 생활하며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답게 살았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이 평안할 때, 다윗은 궁궐을 거닐다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성범죄를 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를 범합니다.
다윗이 -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섰을 때가 그의 원래 모습입니까?
아니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때가 원래 모습입니까?
≪그림 자료 3. <부인하는 베드로>≫
신약에서 베드로도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몬(조약돌)>에서 – 베드로(반석)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수제자도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의 죽음이야기를 하실 때, 제자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주님을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을 것이고 / 예수님이 죽는데 까지 따르겠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본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부인하지 않겠다 장담하는 베드로가 본래 모습입니까?
아니면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가 원래 모습입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 역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연표)】- F. F. 브루스 『바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p.508
5년경 - 다소 출생
33년경 - 회심
35년경 - 예루살렘 방문
47-48년 - 1차 전도여행
49-50년 - 2차 전도여행
53-57년 – 3차 전도여행 : 로마서 기록(57년 초)
57년 5월 - 예루살렘 방문과 체포
57-59년 – 가이사랴에서 갇힘
59년 9월 – 로마 항해 / 로마 도착(60년 2월)
60-62년 – 로마 가택연금
62년 – 석방과 후기 사역(서바나 방문)
65년경 - 죽음(순교)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오직 한 길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 로마에서 순교로 일생을 마칩니다.>
그런 바울에게 <신앙적 흠이 있었을까요? 부족함이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답은 바울도 우리처럼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오늘로 로마서 7장을 세 시간째 강해 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마서 7장은 아직까지 신학적으로 논쟁이 많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논쟁거리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는… / 내가… / 나”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는, 내가, 나 -- 가 바울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제삼자를 가리키는가?> 지금까지 주류 신학자들은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럼 두 번째 논쟁으로 들어갑니다. / 본문에서 말하는 바울의 고민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고민인가? / 아니면 예수님을 만난 직후의 고민인가? / 그것도 아니면 로마서를 쓸 당시 어느 정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고민인가?> 하는 것도 논쟁합니다.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명함은 화려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 율법에 능통한 자였습니다.
그때 바울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고민은 아닙니다.
학자들은 본문의 바울이 고민했을 때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어 신앙이 깊어진 때라고 말합니다.>
그의 신앙이 성숙해졌을 때, 바울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순과 갈등을 7장에서 소개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8장에 말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겪어본 세 가지 모순(갈등) 경험을 소개합니다.
첫째,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모순
15절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은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바울이 지금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새사람과 옛사람이 공존하는 모순
17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분명하게 해방되었습니다.
문제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자마자, 천국으로 들림 받지 못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서 순교하기 까지 대략 32년 더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의 마음에 죄란 놈이 살짝 노크하면, 바울의 육신이 약하기에 쉽게 문을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가득한 내 몸 어디선가 죄가 <세도 주지 않고 무단 거주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낼 수 없는 곳에 무법자로,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불청객으로> 내 몸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것 참 모순이다. 새사람이 되었는데….
아직 옛사람의 모습이 나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셋째, 죄를 범하는 모순
23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내 몸 속에 무단 거주하고 있던 죄가…. 어느 순간 내가 죄를 짓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첫째,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모순
둘째, 새사람과 옛사람이 공존하는 모순
셋째, 죄를 범하는 모순
속에 사는 모순덩어리 신앙인 임을 영적으로 보게 됩니다.
마치 영적인 탕자 꼴이 자신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 영적 자신을 보니 <옷은 추하기 그지없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르고, 온몸은 언제 목욕했는지 모르는 추한 존재로 느껴진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너무나 추하고 더러워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공동번역에서는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라고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이 고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공동번역)>
이 고백을 듣고, 바울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분이 혹시 계십니까?
나는 몰라도 바울 당신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어! 당신은 두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이 베푸신 많은 기적을 체험해 놓고 말이야!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바울이 고백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 주님을 제대로 만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림 자료 4. <이사야의 소명>≫
이사야 선지자를 생각해 보세요.
이사야는 성전에서 놀라운 환상을 봅니다. (사 6장)
- 하나님이 천국 보좌에 앉으셨고, 그의 옷자락이 이사야가 있는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 천사 여섯이 날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 하나님이 임재한 성전 문지방의 터가 지진이 나듯 요동쳤습니다.
- 성전에서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합니다.
그때 이사야가 이런 말씀을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까이 보았기에, 상대적으로 자기의 내면의 더러움이 뚜렷하게 보여 그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을 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한 것입니
≪그림 자료 5. <존 번연>≫다.
《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도 바울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기쁨을 얻었으나, 그 기쁨은 잠시였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절망과 고통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죄에 대한 생각이 날마다 차올랐습니다. 이 죄를 아무리 떨쳐 버리려고 해도 떨쳐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목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사야, 베드로, 존 번연, 사도바울>
이들 모두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기에 그런 고민을 한 것입니다.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에 죄에 대해서 고통했고, 탄식했고, 절망했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민은 <거룩한 고민이요, 긍정적인 고민이요, 희망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이 살아있었기에 모순덩어리 자신을 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하며, 엉엉 웁니다.
그런데 25절로 넘어가면, 엉엉 울던 아이가 언제 울었냐는 식으로 <밝은 미소를 짓는 말씀으로 7장을 마감합니다.>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감사한다고 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 예수님이 해결 방법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해결방안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로마서에서 보석 같은 장, 로마서 8장>에 나옵니다.
오늘 로마서 7장을 마감하면서
성도님들이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에게는 3대 적(敵)이 있다. (마귀, 세상, 육신(죄성))
이 중에 바울은 <육신<옛 습성, 죄성>>을 오늘 본문에서 다루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에게는 3대 적을 물리칠 능력이 있다.
나의 능력과 힘이 아닌 예수님, 성령님과 함께한다면 언제든 승리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결국 성화의 삶으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 6장부터 성화의 문제를 다루면서 7장에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화를 위하여 이런 문제에 승리하면서 살아야 함을 알려주고 싶어서 인 것입니다.
설교 서론에서 말씀드린 부족하게 보인 세 사람도 보십시오.
모세 — 욱하는 성질의 그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성화를 이루어갔다는 말입니다.
다윗 – 간음죄, 살인죄를 범했지만, 시편 51편의 철저한 회개와 성화의 삶을 산 결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베드로 – 주님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복음을 전 하다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 –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요.
오늘 여러분에게는 <바울이 한 고민이 있으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런 고민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매일 깊이 만남으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정확하게 고민하고 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지만, <예수님과 함께 할 때 풀어낼 수 있음을 믿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시고,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