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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H9-SOGSiAGI
본문 로마서 11:13-24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1-02-21

로마서 11:13-24 능력 주께 있네

 

여러분들 주변에는 믿음으로 살려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님들이 많이 있습니까? 사실 주변을 자세히 보면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를 내다보면 더욱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는 네팔 최양임 선교사님도 그런 분입니다.

2019년 4월 말에 저를 포함 우리 교회 6명이 네팔에 성전 봉헌식을 하려고 다녀왔습니다. 네팔? 하면, 히말라야산맥이 있기에 공기가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막상 가보니 공기가 우리나라보다 더 좋지 않았습니다.

도로 사정도 고속도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지방도로 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이동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습니다. 게다가 지진도 자주 나는 곳이니 환경으로 말하면 최악의 환경입니다.

 

그 환경에서 최양임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 후원으로 두 교회를 건축하셨고, 그 영혼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또 학교도 하나 운영하시는데, 카트만두에서 어우러히 학교까지 200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길이 좋지 않아 편도 7시간이 걸립니다. 그 길을 얼마 전에도 가셔서 코로나 19로 힘은 학생들에게 쌀을 나눠주셨습니다.

<사진 1. 학교 학생 전경 / 2. 쌀 증정 사진>

 

그리고 2월 7일에 또 소식이 왔는데

선교사님이 <고띠가웅 마을>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해발 2500m에 있는 고띠가웅 마을에 불이나, 45가구 중 30가구가 전소되었고, 이재민 214명(학생 66명)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 카트만두에서 출발해서 고띠가웅 마을까지 가는데 무려 편도 36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힘든 길을 가서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쌀, 이불)을 나눠주고 왔다는 것입니다.

<사진 3. 화재 사진 / 4. 전소된 사진 / 5. 쌀과 이불 나눔 장면>

 

제가 최양임 선교사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선교사님의 <영혼 구원의 마음>을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네팔 땅에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36시간 흔들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재민에게 가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영혼 구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로마에 투옥되어서도 전도했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석방된 후 선교한 교회를 심방하며 돌아보았고,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순교로 일생을 마친 것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로마서 9장, 10장, 11장 – 총 3장에 걸쳐서 <유대인>이 구원받기를 소망하면서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오늘 본문 13-14절에도 보면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유대인들 중에 얼마라도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합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3-14절)

 

이렇게 바울은 <이방인 선교사>로 사명을 감당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의 구원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가슴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다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구원에 대한 시선은 <몇천 년 후까지 멀리 봤습니다>

바울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의 위대함에 놀라게 됩니다.

 

바울 한 사람도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넓이, 높이, 깊이, 높이>를 안다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저는 성도님들 모두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셔서 주님 주시는 풍성한 은혜 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으로,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핵심 내용 3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구원받은 이방인이여(정동교회 성도들이여) 겸손하라.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구원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생각할 때는 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방인은 –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닙니다.

이방인은 – 하나님의 말씀(율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은 –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방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전도하라는 사명을 받아 전도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전도하는 곳곳마다 구원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쓰고 있는 지금도, 로마에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울은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가치나 자격이 없는 돌감람나무 가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돌감람나무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구원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 올리브나무>를 말합니다.

 

17-24절 까지 말씀하는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야생 감람나무)를 접붙여 졌다는> 말씀은, 원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거꾸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접붙이려면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 가지를 붙여야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참감람나무에다 못된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도시에 자란 사람으로서 원예에 대한 지식의 한계가 있었고, 그가 걷는 길 양옆으로 펼쳐진 감람나무밭을 보면서도 감람나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바울이 무지함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잘 읽어보면 바울이 접붙이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24절에 “본성을 거슬러”라는 표현입니다.

24절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바울은 돌감람나무 가지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바울이 언급하고자 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쓰신 방법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하여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이방인이 구원받았기에 /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알아라. 겸손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 신앙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18절 상반절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20절 하반절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을 자격이 있었던 분이 계십니까?

보통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한 3년 정도까지는 은혜로 합니다. 예수님만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말씀을 들어도 전부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다가 서리 집사가 되고, 항존직이 되어 10년 20년 5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오간 데 없고 <교회에서 자신이 제일 높은 사람>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점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 구원받은 것 아니라, 100%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 자랑할 것도 없고, 교만할 것도 없다. 그러니 철저히 겸손하게 믿음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항존직 여러분! <은혜를 알라, 겸손하라. 관리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유대인에게도 희망은 있다.

지금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는 삶을 살기에 이제 희망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 이유를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유대인의 독보적인 위치>를 설명합니다.

 

세 가지 비유 중에 두 가지 비유가 16절에 나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6절)

유대인은 – 처음 익은 곡식과 같아서 이미 하나님께 드린 바 되었다.

유대인은 – 성전에 심은 묘목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의 모습이 시원치 않아 보일지 몰라도, 이미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언약을 맺은 자손이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6절을 쉽게 표현하면 이런 말씀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백성이며, 그들이 반역하고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비유가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입니다.

제가 앞에서 바울이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된 원예법을 거슬러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유대인이 볼 때는 말이 안 되었지만, 하나님은 이방인을 구원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감람나무(올리브나무) 사진을 보십시오.

<사진 6,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올리브나무>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올리브나무는, 겟세마네 동산 정원에 있는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 특징 : 수명이 길고, 인내한다.>

감람나무는 다른 나무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나무는 수령 1,000년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갈릴리에 있는 한 감람나무는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이 정복 전쟁을 나섰던 주전 331년부터 생존했다고 합니다. 식물학자의 말입니다.

주전 331년에 심었다고 해도, 지금 수령이 2300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또,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고, 생명(구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해할 때는 <생명 나무, 구원의 나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감람나무는 자기가 먹기 위해서 열매를 맺지 않고, 남을 주기 위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식이고, 열매를 짜면 기름이 되는데 성전부터 서민의 집을 밝히는 기름과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슬러 <가지가 잘려나갔지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떨어진 가지를 붙여준다는 의미입니다.

 

24절을 보세요.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지금 바울은 지금은 <동족 유대인이 구원받지 못한 “슬픈 현실”>이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은 절대로 구원에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다시 생명 나무에 접붙여 주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유대인은 해피 엔딩[happy ending]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다음 주일에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유대인에게 희망은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까지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셋째,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23절을 보세요.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참감람나무의 가지 <이스라엘>을 자르신 분도 –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 <이방인>을 붙이신 분도 – 하나님이셨습니다.

잘려나간 참감람나무 가지, 메말라 붙을 것 같지 않던 <참감람나무 가지 유대인>을 붙이실 분도 –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3절 하반절에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고 선언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오늘 설교 제목 “능력 주께 있네!”라고 정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구약성경 두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한 장면은 에스겔 37장이었습니다.

성도님 중에 에스겔서를 통달할 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 37장 말씀을 모르는 사람 또한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그 뼈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 뼈들이 서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사람 해골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해골들에 골격과 살과 피부가 생겼습니다. 에스겔이 계속 외치자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스겔 37장 10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하나님은, 이어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마른 뼈처럼 아무런 소망도 없지만, 하나님이 영을 그 속에 들어가게 해서 살아나게 하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른 뼈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는 분>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한 장면은 <사무엘 1, 2장에 나오는 한나>입니다.

자식이 없어 괴로운 삶을 살던 한나가 실로 성소에 올라가 “통곡의 기도, 서원 기도, 침묵의 기도, 통하는 기도”를 했더니,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사무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들 셋 + 딸 둘)을 보너스로 더 주셨습니다.

아이 하나 생기지 않아 고통 하던 한나의 태를 하나님이 손대시니, 그 몸에 4남 2여 육 남매를 출산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가 이렇게 기도하지요. 일부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이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지금 여러분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할 문제라도, <능력의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를 한나처럼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문제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고백이 뒤따라야 합니다. 복음 송가 가사처럼

생명 – 주께 있네 / 소망 – 주께 있네 / 능력 – 주께 있네…….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마시고, 능력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지금부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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