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18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YP-OkRBGhTc
본문 요한복음 12:12-19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1-03-28

요한복음 12:12-19  왕이 오신다

 

예수님은 33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30년 동안의 기록은 별로 없고 공생애 3년 동안의 기록이 많습니다.

공생애 3년 기록 중에는 마지막 일 년 동안의 기록이 많고,

1년의 기록 중에서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일주일 기록이 가장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 중 마지막 한 주를 시작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종려 주일 하루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토요일 - 베다니에 도착하여 머무심

토요일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리고를 떠나서 베다니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베다니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광야에 엘림처럼 예수님에게 참 쉼과 평안을 주는 안식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마다 예루살렘에서 6km 떨어진 베다니에서 머무셨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영과 육, 두 성품을 만족하게 해 주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 남매>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려주었던 곳이 베다니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 도착하셔서 저녁을 <한센병에 걸렸다가 나은 시몬의집>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주빈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나사로>가 초대되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식사가 무르익었을 때, 마리아는 준비해 간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고귀한 나드 향유는 예수님의 머리에서부터 흘러 발끝을 적셨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께 기름 부을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이 빛난 이유는 이 사건은 ‘'빈민의 집 / 빈민촌’이라는 뜻을 가진 베다디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베다니는 예루살렘 성에서 살 형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밀려나 광야 언저리에 형성된 빈민촌이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오늘날 3천만 원 정도 되는 300데나리온의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께 붓는 행위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 붓는 행위는 예수님이 메시야(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임을 확정하는 예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구원자로 예루살렘 입성 전에 기름 부름을 받아 메시아, 구세주가 되셔야 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형식적인 면에서 기름 부음으로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또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토요일 밤이 지나갔습니다.

 

종려 주일 – 예루살렘 입성

드디어 종려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림 자료 1.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 카톡으로 보낸 것>

※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를 보며 몇 가지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 그림은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입니다.

㉠ 예수님이 토요일 머문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6km 떨어진 <베다니>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니 종려 주일 예수님이 출발하신 장소는 <베다니>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출발하시며 두 제자<베드로와 요한으로 추정>를 베다니 윗마을 벳바게로 보내서 <아무도 타보지 않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베다니 벳바게>를 함께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지산・범물을 함께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산・범물이라고 할 때 우리는 지산동 위에 범물동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들은 베다니・벳바게, 혹은 벳바게・베나니 하면 설명하지 않아도 <벳바게는 윗동네, 베다니는 아랫동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그림에서 또 보셔야 할 것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 길로 내려가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동쪽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유목민이 장막을 칠 때, 문은 반드시 동쪽으로 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도 정문이 동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문을 동쪽으로 내는 이유는 <귀한 손님은 동쪽에서 오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귀한 손님은 동쪽에서 오신다.

왕도 동쪽에서 오신다.

열왕기상 1장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취임하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이 입성하시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나귀를 주고 솔로몬을 태우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솔로몬과 솔로몬을 추대하는 신하들은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와 왕으로 기름을 붓는 의식을 행한 후, 다윗성으로 들어갑니다. 이때 많은 백성이 환호하며 축복했습니다.

 

메시야도 동쪽에서 오신다.

예루살렘 성지에 가보면, 감람산 옆에는 유대인의 무덤으로 넘쳐납니다. 엄청나게 많은 석관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오시면 가장 먼저 부활하겠다고 무덤을 예루살렘 동편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지리적인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베다니에서 출발하신 예수님이 벳바게에> 도착해서 있었던 일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벳바게에서부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벳바게 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예루살렘이 보였습니다. <성전이 보였고, 다윗성>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감람산 길을 내려오는 가운데 군중들은 열광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누가복음 19:38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하니”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 / 주의 이름으로 오는 왕>이라고 말하면서 그 왕에게 “호산나” 하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헬라어 <호산나>는, 히브리어로는 "호쉬아 나"의 음역입니다.

여기서 "나"는 "지금"이라는 뜻이고, "호쉬아"는 "구원해주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호산나"는 "지금 구원해주소서."라는 뜻이지요.

 

백성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호칭하며, 지금 구원해주소서’라고 할 때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평상시 예수님이시라면 왕이라고 추앙하는 군중들을 책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왕이라고 외치도록 그냥 둡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들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라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왕이었고,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인류를 구원할 왕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군중들이 바라는 왕과, 예수님이 말씀하는 왕은 다릅니다.

군중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다윗이 왕으로 통치할 때처럼 백성을 평안하고 잘 살도록 해 주는 왕>으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하여 진정한 자유를 주는 영적인 왕> 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셨고, 군중들을 그대로 소리치게 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치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 <자신들이 메시야, 인류를 구원할 왕>을 죽였음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그대로 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왕의 입성>으로 말씀하고 있기에 오늘 설교 제목을 <왕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어떤 왕의 모습으로 입성하셨는지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성경대로 오신 왕

구약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 한 후부터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할 계획을 성경 곳곳에 말씀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시작으로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출생, 고난, 죽음을 마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사람이 기록한 것처럼 기록합니다.

 

내일부터 <놀라운 예언, 이사야 53장을 바라보다> 는 주제로 살펴볼 이사야서 말씀도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00여 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주님의 돌아가심을 묘사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 깊이 있는 말씀에 저와 함께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서는 어디에 예언해 놓았습니까?

본문 15절에서 말씀하는 배경은 구약 <스가랴 9:9>입니다.

예수님이 입성하기 전, 500년 전에 활동한 스가랴 선지자가 어떻게 예언했는지 함께 읽어봅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행동에 옮기면서 <성경대로 오신 왕>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둘째, 겸손하신 왕

방금 읽은 스가랴 9:9 하반절에 “겸손하여서 나귀를 나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말씀하시며 예수님이 겸손한 왕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왕이라면 멋지게 보이는 백마를 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서 많이 보았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백두혈통을 타고난 자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백두산에 오릅니다.

이때 멋진 백마를 타고 오릅니다.

<그림 자료 2. 김정은 백마 사진>

독재자 다운 풍채 아닙니까? 우리가 볼 때는 우습게 보이지만 김정은이를 신으로 받드는 북한 사람들이 보면 감탄할 만한 사진입니다.

 

<그림 자료 3. 예수님과 나귀 사진>

그럼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을 보세요. 김정은과 비교하면 초라하지요. 하지만 성경은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이유를 <겸손한 왕>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겸손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나타납니다.

태어나실 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자라실 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공생애 사역하실 때는 자신의 겸손하심을 말씀으로 남기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30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겸손】을 사전에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가지신 겸손은 그 말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지신 겸손을 성경책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겸손 :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주어 그들을 섬기는 데서 발생 되는 모습】

 

이렇게 정의하고 예수님을 살펴보면 겸손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지만 – 종으로 헌신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오셨지만 –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오셨지만 – 대제사장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유월절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셋째,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왕

예수님이 입성하신 날은 유월절에 제물로 드릴 양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말씀하는 명절은 유월절을 가리킵니다.

유월절이 되면 12살 이상 된 유대인 남자들은 모두 유월절을 지켰어야 합니다.

당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몇 명이 모였는지를 알려면, 제물로 바쳐진 양이 몇 마리였는지만 파악하면 됩니다.

보통 양 한 마리에 10명 정도로 참석한 것으로 계산하였다고 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유월절 제사에 사용된 양이 256,500마리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대략 270만 명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합니다. 좁은 예루살렘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으니 인산인해를 이루었겠지요.

<그림 자료 4. 현대 종려 주일 행사>

보시는 그림은 현대의 종려 주일 행사 때 복잡한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256,500마리의 양도 유월절 제물로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과 많은 양의 행렬 가운데 <예수님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실 제물로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금요일 온 인류를 구원할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돌아가심으로 <인류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장인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 이야기>가 나오고, 오늘 입성 이야기 뒷부분 16-19절에도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렸듯, 모든 인류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왕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금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속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하고 부푼 꿈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저분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줄까?’

‘저분이 서울시장, 부산시장이 되면 더 좋아질까?’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냉정한 교훈을 줍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킨 지도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지도자에 대한 기대의 역사는 곧 실망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셔서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하실 <만왕의 왕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000년 전 입성하실 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영적인 문제,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온전히 모시는 것입니다.

힘든 환경에서 예수님은 나의 왕이라고 힘차게 고백하고 왕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99 감사함으로 살아가리 (출 23:16, 마 14:13-21) 2021.07.04 558
398 로마서 강해 56. 심판대(審判臺) 앞에 서리라 (롬 14:7-12) 2021.06.27 202
397 로마서 강해 55. 형제를 포용하라 (롬 14:1-6) 2021.06.20 214
396 로마서 강해 54. 자는 자여, 깨라! (롬 13:11-14) 2021.06.13 302
395 로마서 강해 53. 사랑 이야기 (롬 13:8-10) 2021.06.06 199
394 로마서 강해 52. 국가에 대한 성도의 자세 (롬 13:1-7) 2021.05.30 168
393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시 51:10-12, 살전 5:19) 2021.05.23 323
392 로마서 강해 51. 적대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4-21) 2021.05.16 229
39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6:9) 2021.05.10 218
390 의인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시 37:23-31) 2021.05.02 514
389 로마서 강해 50. 교회 봉사의 원리 (롬 12:9-13) 2021.04.25 354
388 로마서 강해 49. 교회에서 이렇게 봉사하라(롬 12:3-8) 2021.04.18 219
387 로마서 강해 48.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2) 2021.04.11 412
386 죽음을 넘어 부활을 살다 (막 16:14-20) 2021.04.06 178
» 왕이 오신다 (요 12:12-19) 2021.03.28 185
384 신앙의 고비를 만났을 때 (히 10:19-25) 2021.03.23 343
383 진리에 관한 문제 (요 1:35-51) 2021.03.14 170
382 로마서 강해 47. 기독교 세계관 (롬 11:33-36) 2021.03.07 212
381 로마서 강해 46. 구원의 신비 (롬 11:25-32) 2021.03.02 600
380 로마서 강해 45. 능력 주께 있네 (롬 11:13-24) 2021.02.23 283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