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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LMXJFBwEIRc
본문 마가복음 3:7~19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22년 2월 27일

마가복음 3:7-19 일보후퇴(一步後退)십보전진(十步前進)

 

일보후퇴, 이보전진이란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일보후퇴, 이보전진은 손무(孫武)의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의미는 반복되는 싸움마다 승리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일시적으로 한발 물러서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예수님의 사역도 손자병법으로 표현하면 <일보후퇴, 이보전진 보다는 십보전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일보후퇴, 십보전진>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7-12절에는 일보후퇴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13-19절에는 십보전진하기 위하여 열두 사도를 세우는 말씀이 나옵니다.

 

1. 일보후퇴(一步後退) 이야기(10-12절)

이 말씀은 예수님의 1차 갈릴리 사역 결과를 말씀합니다.

1차 갈릴리 사역은 마가복음 1장 14절부터 시작됩니다.

1차 사역을 통해 예수님은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 4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베드로의 장모 열병도 고쳐주셨습니다.

- 나병 환자도 고쳐주셨습니다.

- 바리새인과 5가지 논쟁을 통해서 예수님의 정체성도 명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역한 결과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1) 예수님의 소문이 외국까지 퍼졌습니다.

8절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8절을 지도로 표시해 보면 놀랍습니다.

<그림 자료 - 지도 참고>

 

220227 그림지도.jpeg

 

갈릴리를 포함하여 = 유대 + 예루살렘 / 이두매(에돔이라는 이름을 라틴화 한 것으로 에돔을 말합니다) / 요단강 건너편(데가볼리, 베레아) /북서쪽으로 두로 시돈(외국)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그 먼 길을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더라 / 예수님은 어떤 병이 든지 고치더라

- 예수님이 당시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과도 논쟁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이

꼼짝하지 못하더라. 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을 보자 터치하려고 난리를 칩니다. 거기에는 더러운 귀신들린 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도 형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치유 사역, 말씀 사역이 바리새인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는 사람으로 보였고, 예수님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헤롯당>과 합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긍정과 부정으로> 극에 달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선택한 방법은 그 자리에서 <일보후퇴> 하는 것이었습니다.

7절에 보세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이 말씀에서 “물러가시니” 라는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9절에도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 말씀에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 했다>는 말씀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1차 갈릴리 사역의 결과로 자신을 향한 긍정과 부정이 함께 극에 달했을 때 그 자리를 피해서 <갈릴리 바다로 물러갔다>

그래도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갈릴리 바다로 오자 <배를 대기 해서 피할 준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물러나심, 예수님의 피하심은

신변의 위협 때문일 수도 있고, 평소 습관이나 성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물러설 때를 아셨고, 의도적으로 물러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물러섬의 영성 혹은 부정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잘못합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을 더 좋아합니다.

유명가수들은 – 천 명보다는 만 명, 만 명보다는 십만 명이 모여 있는 곳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합니다. 훨씬 기분이 좋으니까요?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니까요?

지금 선거유세를 하는 대통령 후보들도 보세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을수록 목소리를 더 높이고, 행동도 과격하게 합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 이루시기> 위해서, 인기가 오르고, 반대세력이 등장할 때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물러섬의 영성>입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일보후퇴>가 필요합니다.

이는 저부터 여러분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때, 교회에서 인정받을 때 - 조용히 <영성공동체나, 기도원에 가서 주님과만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득이 다른 곳으로 장소적으로 물러설 형편이 아니라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침묵하거나, 텔레비전과 휴대전화기를 멀리하면서 주님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사순절>이 이런 기간입니다.

<세상의 삶에 바빠서 정신없이 살던 내가 삶의 자리에서 한발 물러나,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생각하는 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물러섬의 영성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11절)라며 엎드려 부르짖을 때도,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12절)고 엄히 경고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역은 <십자가의 사역인데> - <말씀 사역, 치유 사역, 축귀 사역>이 예수님의 전부인 양 오해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또 정치적인 메시야로 오해받는 것이 싫었기에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십보전진(十步前進)이야기(13-19절)

두 번째 단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십보(十步)>를 더 나가기 위해서 열두제자를 세우시는 내용입니다.

 

마가복음의 저나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갈릴리에서 사역을 3차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제가 분류를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3차 갈릴리 사역 분류>

1차 갈릴리 사역 (1:14-3:12) - 4명의 어부를 제자로 부르심

2차 갈릴리 사역 (3:13-6:6) - 열두제자를 세우심

3차 갈릴리 사역 (6:7-8:26) - 열두제자를 파송하심

 

3차에 갈릴리 사역의 특징을 찾아보면 <제자를 부르시거나, 제자를 세우거나, 제자를 파송함으로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와 관련된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하나님은 무엇이든 혼자서 하실 수 있으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천지창조를 하실 때처럼 <000이 있으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며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통해서 일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동물들을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고, 에덴동산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성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원하셨던 것처럼>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도 당신 혼자서 사역하시지 않으시고 1차 갈릴리 사역부터 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예수님은 구원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배경이 되는 13절부터 보세요.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여기에서 “산에 오르사”라는 말은 계시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듯이

예수님께서 계시적인 장소에서 <제자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제자를 세우신 <산>은 예수님이 평소에 기도하셨던 한적한 곳이고, 산상수훈을 선포하신 산으로 추정합니다. 영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에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에 보면 <예수님이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뒤에> 열두 사도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이란 말도 중요합니다.

제자를 세우실 때, 세우시는 조건이 제자들의 자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권적 선택에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열두지파를 통해 이스라엘을 형성했듯이,

새로운 언약의 백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열두 명의 제자를 선택했습니다.

열두 제자의 이름은 여러분 다 아시지요?

공관복음서에 보면 몇 명은 순수가 다르지만, <어렸을 때 교회학교에서 불렀던 <열두제자 이름 노래>를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그림 자료 – 열두제자 이름 노래> - 2번 반복해서 불러봅니다.

 

220227 베드로와 안드레.jpg

 

교회 행정학에서는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부르신 후, 4명씩 3그룹으로 나눠 관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 반대로 제자이긴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익히 알지요.

이 세 사람은 특별한 경우 –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마 5:37),

변화산의 변형(9:2),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14:33)- 함께 했습니다.

반면 다대오는 잘 모릅니다.

가룟 유다는 나쁜 쪽으로 유명한 인물이지요.

 

제자들을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에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사역을 전하기 위해서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본문은 열두제자를 세우신 이유 두 가지를 명확하게 밝힙니다.

<열두제자를 세우신 이유?>

첫째,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여기에서 <함께 있게 하시려고> 제자를 세웠다는 말은, 예수님이 직접 삶으로 제자를 가르치겠다는 말입니다. 3년 공생애 기간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은 누구인지? 예수님의 사역 목적은 무엇인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들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게 해 주려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열두제자를 세우신 이유?>

둘째,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서

14절 이어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제자는 늘 예수님 곁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결국은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말씀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살도록 내보내는 것입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도 있지만,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을 때도 자신의 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으로 보내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① 전도하라(14절 하반절)

여기에서 말하는 ‘전도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케뤼소’라는 말인데 <선포하다. 알게 하다. 설교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전도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

전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했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②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15절)

효과적인 전도를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도 예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십보전진하기 위해서 일보후퇴를 선택했습니다.

십보전진하기 위해서 열두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세우신 열두제자 중에는 성공적으로 사역을 감당한 다수지만, 일부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제자, 또는 없었으면 좋을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욕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십보전진>하기 위해 예수님이 불러주신

나는 어떤 제자인가? 생각해 보세요.

김창훈 교수(총신대 설교학)는 오늘날 교회 안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 교인 : 이들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 신자 :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단지 자신만 믿지 복음 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전혀 활동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 제자들 :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대로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두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후일 주님이 나를 평가할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주님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았다고 평가받는 주님께 꼭 필요한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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