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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dLLmo0FCFUA
본문 베드로전서 3:1-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5-19

베드로전서 3:1-7 그리스도인과 가정

 

1995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모 방송에 나온 꼬마가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꼬마의 이 말을 창원에서 목회를 하시던 권재도 목사님 듣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 날(20일)까지 있는데, 왜 정작 가정의 핵심인 부부를 위한 날은 없을까?”

 

권 목사님은 달력을 보고 5월 세 번째 주일을 특별하게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 번째 주일은 5월 21일었습니다.

목사님은 부부특강과 사랑 나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부부간 밋밋한 사랑 고백을 보완해주 매개물로 장미를 선택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줄 빨간 장미에는 “사랑과 정열”을, 아내가 남편에게 선물하는 핑크빛 장미에는 “사랑과 존중”이라는 나름의 꽃말을 붙었습니다.

 

목사님이 구상하신 이벤트가 대박이 났습니다. 교인들이 너무 좋아한 것입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 여세를 몰아 창원과 마산을 돌며 캠페인을 시작했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서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부부의 날을 국회에 2001년에 재정해 달라고 청원했고,

2003년 12월 18일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그로부터 4년 뒤, 2007년 대통령령(노무현대통령 당시)에 의하여 ‘부부의 날’은 국가 기념일로 공식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5월 21일을 부부의 날이라고 한 의미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의미가 있지요.

성경에도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부부를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이 다시 하나로 합치도록 만드셨습니다.

 

금년 부부의 날은 오는 화요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 가운데, 부부사이는 어떤 사이가 되어야 하는지 베드로사도가 당시 부부에게 권면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주후 64년경, 로마 식민지에 흩어져 살던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주후 64년경 로마인들의 부부관계는 어떠했을까요?

로마 제국의 성(性) 윤리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원하는 누구와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는 자신의 노예나 하인, 또는 창녀와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남자가 홀로 있는 여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그녀가 거절하면, 그가 강압적으로 그녀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매우 모욕적인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는 젊은 여자의 남편이 죽었을 경우, 그녀가 즉시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상대편 남자를 사랑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여자는 누군가와 결혼해서 남자에게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는 그런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가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부관계, 성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

남자와 여자는 오직 결혼이라는 언약관계에서만 성관계를 할 수 있다.

남편이 일찍 죽은 여자를 교회가 철저하게 도와준다.

그러므로 과부들도 자신이 원할 때 결혼을 할 수 있다.

 

당시 <로마 제국의 문화>에 <기독교의 부부관계와 성 윤리>가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독교윤리가 승리하게 되었고,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합니다. 물론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므로 많은 폐단도 따랐지만, 기독교가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초창기 크리스천 로마 황제 가운데 한 명이었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46-395)는 “어떤 여자에게도 그녀의 동의 없이는 남자가 성관계를 강요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령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세상의 문화를 앞서갔고, 선도해 갔습니다.

오늘 말씀도, 지금 우리가 보면 당연한 말씀이지만 주후 64년경 로마치하에서 로마 문화 속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혁명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절은 <아내에게 하는 말씀>, 7절은 <남편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1. 아내에게 하는 말씀

여기에서 먼저 전제하고 들어가야 할 것은 초대교회 당시에도, 오늘 교회의 구성원처럼 남자들이 적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마다 여성의 비율이 높습니다.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여 성도 중에는 믿는 남편도 가끔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남편이 믿지 않았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니 이 말씀의 전제는 <믿는 남편>은 물론이요, 특히 <불신 남편>과 살고 있는 여 성도들에게 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순종하라.

1-2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5절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초대 교회 여성도의 남편은 대부분 이교도였습니다. 그러니 이교도인 남편, 기독교인 아내 사이에는 당연히 신앙적인 핍박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내가 믿는 신을 따르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아내는 <하나님 외에 우상은 절대로 숭배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져있었는데, 아내는 하나님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갈 3:28)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사건건 이교도 남편과 기독교 아내 사이에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아내들은 남편에게 말 대구를 하거나 자신의 뜻을 말했다가 심한 핍박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베드로 사도는 아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순종의 삶을 사는 아내의 행실을 보고 불신 남편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2)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하라.

3-4절, 메시지 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모(머리 모양, 몸에 걸친 보석, 옷차림)가 아니라, 여러분의 내적인 마음가짐입니다. ○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하십시오. 내면을 온화하고 우아하게 가꾸십시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당시 로마 여자들의 머리 모양을 보면, 요즈음 사람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합니다. 조금 흐리지만 그림으로 한 번 보시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그림 1. 2. 3. - 로마시대 머리 모양>

<그림 4. - 로마 시대 장신구들>

 

로마 여자들이 그렇게 꾸몄으니, 기독교인 여성들도 형편만 되면 꾸미고 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사도는 일침을 놓습니다. <외모를 단장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 기독교 여성이라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은 <온유함, 정숙함>을 들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가짐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 권고는 오늘 여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모지상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성형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성형을 하나 안 하나 <원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요즈음은 어떻게든 외모를 가꾸려고 애를 씁니다.

자녀의 졸업 입학 선물로 – 성형수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외모 보세요. 머리부터 그 아래 눈섭, 눈, 코, 입, 턱, 손과 발톱의 네일아트 // 머리는 얼마짜리인지? / 가지고 있는 가방은 얼마짜리 명품인지?

<그렇다고, 기독교 여성이 초라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당시 외모를 가꾸는데 정신없이 몰두했던 로마의 여성들처럼 그렇게 살지 말고, 진정 주님을 닮은 여성으로서 내면을 가꾸는데 시간을 보내고 노력하라고 했습니다.>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가꾸어도 추해집니다. 하지만 내면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정동의 여성도 여러분!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하시는 사람이 되십시오.

 

(3) 아내의 모델 – 사라

6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여성도가 닮아야 할 모델로 베드로사도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제시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주권, 즉 결정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주’라는 말은 사람이나 사물을 소유한자, 그 주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이나 노예들이 자기 상전이나 주인에게 쓰던 말입니다. 특별히 존경과 영예를 드려야 할 이들에게 돌리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로마시민은 로마 황제를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표현을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진짜 훌륭했기에 사라가 주라고 불렀을까요? 아닙니다.

사라의 입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아내라고 당당하게 말도 못한 사람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하자, 그래야 내가 산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기근으로 애굽에 갔을 때, 창세기 20장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그러했습니다. 두 번 다 사라는 자신의 몸을 버릴 뻔 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혼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고, 결국은 그 삶이 열국의 어미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모델을 닮으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남편에 대한 표현 <자기야! 오빠야>라는 표현보다 옛날 어르신이 하신 <주인, 주인 양반>이라는 표현이 훨씬 성경적입니다. 그렇기에 호칭부터 - 마음까지, 남편을 인정하고 존중하시기를 바랍니다.

 

2. 남편에게 하는 말씀

7절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제가 결혼 주례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남편에게 베드로사도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1) 지식에 따라 동거하라.

당시 로마 사람들은 아내를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했을 때인데,

베드로는 자기 아내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지식을 동원해서 폭넓은 이해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려고 하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겠지요.

하지만 경건한 남편은 자기 아내의 기분, 감정, 욕구, 두려움과 소망을 이해하고자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가정사역자 중에 J목사님과 L사모님이 계십니다.

보통 가정사역자 하면 그분들은 청년시절부터 참 가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의 모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가정이 깨어지거나, 아픔을 겪어보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가정을 세우려는 분이 많습니다.

J목사님과 L사모님도 그런 분입니다. 제가 대전까지 가서 한 학기 동안 가정 사역을 두 분에게 배웠기에 잘 압니다.

두 분이 결혼할 때, 남편은 영어 학원 강사로, 아내는 간호사였는데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살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남편이었습니다. 성격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청소 검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선반 위나 지저분하다 싶은 데를 손으로 닦아서 먼지가 나오면 <당신은 집에서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L씨는 더럽다는 부분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신혼이면 남편이 퇴근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정상인데,L씨는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두려워지고 불안하여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는데, 어느 날 저녁에도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집이 더럽다고 잔소리를 하는데>, L씨가 요리를 하다가 들고 있던 프라이팬을 남편을 향해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분과 느낌을 있는 대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남편은 <아내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부부는 가정에 대한 공부를 하고 깨어져 가는 가정을 살리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L사모는 저희들에게 강의하면서, 그때의 충격으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지식에 따라 동거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례 때마다 늘 말씀하는 것이, <남편과 아내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시라고 하는데> 특히 이 말씀은 남편들이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내 아내는 게리 채프먼(Gary Chapman)이 지은 <5가지 사랑의 언어>(The Five Love)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중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현재 아내의 감정은 무엇인지? 고민은 무엇인지? 소망은 무엇인지? 지식적으로 알고 아내와 동거하라는 것입니다.

 

또 신앙 안에서 아내는 어떤 위치인지? 하나님은 아내를 어떻게 창조하셨고, 앞으로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지? 믿음의 눈으로 아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내가 영적으로 남편과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2) 아내를 귀히 여기라.

내가 귀하듯이, 아내도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섭리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 한 남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남편들은 아내를 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귀하게 대하는 첫 번째 방법은 <말>부터 귀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경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내를 대할 때 말(언어생활)부터, 집안에 어떤 일을 하는 부분까지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

7절 하반절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쉽게 말하면 <아내와 연합과 교통이 = 하나님과 연합과 교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은혜되고 응답 되겠습니까? 그렇듯이 우리의 영성생활을 위해서 남편은 아내를 잘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자, 말씀을 정리해 보십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출발은 <부부로부터입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인류가 시작되었듯이, 가정의 출발도 <남편과 아내>로부터 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을 바르게 세우기 위한 성도라면 <남편과 아내>로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아서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두운 로마문화를 기독교와 기독교 가정이 바르게 세워나갔듯이,

오늘 깨어지는 가정, 어두워지는 가정을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 가정이 다시 세워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기독교인의 부부가 아름답게 보이고, 닮아가고 싶고, 그래서 자신들도 예수를 믿고 싶도록 여러분의 부부가 모델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넓게 이 말씀을 마무리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삼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알고,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께 순종하고, 신앙으로 우리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해 나가서>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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