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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Lv1iBHlsGlU
본문 유대와 이방의 벽을 허무시다(행 11: 1-18)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10-08

사도행전 11:1-18 유대와 이방의 벽을 허무시다.

 

우리는 두 주전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 강림의 역사를 생각했습니다.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에는 4가지 특징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① 성령이 거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10:44)

②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10:44)

③ 성령은 말씀과 동시에 역사한다.(10:44)

④ 방언의 역사가 일어났다.(10:46)

저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성령 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임함을 보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물세례를 줍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성령세례와 물세례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 후에 고넬료와 베드로사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먼저, 고넬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고넬료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정 해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대 백부장으로서 가이샤랴에서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너무나 귀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로마군인의 편에서 보면 고넬료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는 왜 로마인이면서 유대인의 종교를 믿느냐? 왜 로마의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이란 신만 따른다고 하느냐?’는 비난도 받았을 것이고, 상관에게 찍혀서 진급하는데도 상당한 제약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가정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 충만 하자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확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성령 받은 후, 고넬료의 군대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출신지 로마로 돌아가 로마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말씀 드린 이 부분은 성경에 기록해 놓지 않았기에 추측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로마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 그럼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에 대해서는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먼저 1-3절을 읽어보십시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에서 성령강림의 역사를 경험한 후에, 예루살렘교회로 올라갔습니다. 그동안 베드로사도는 무엇을 했습니까? 복음이 전파된 여려 지역으로 순회하면서 심방하고, 말씀전파 사역을 했습니다.

룻다에서는 – 8년 동안 중풍 병에 걸린 애니아를 고쳐주었습니다. 이 치유 사건을 통해서 룻다와 샤론평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욥바에서는 –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도 행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도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가이사랴에는 – 인종적인 땅 끝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고, 복음이 전해지는 그 순간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나 그 가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선교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성도들은 베드로 사도가 도착했을 때에, 베드로 사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흔히 하는 말로 <버선발로 나와서 베드로사도를 영접하고, 그동안 수고 했다고 격려해주며, 음식도 잘 준비해서 대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1절에, 고넬료의 집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2절 하반절 “할례자들이 비난하여”라고 하고 있고,

3절에 비난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다 기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에 다녀도, 교인들 중에는 그 교회에 좋은 점을 보지 못하고 안 좋은 모습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흰 종이에 작은 점 하나 찍힌 것이 전부인데, 그 점만 크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회 속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예 생각을 이렇게 하십시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도, 성도 중에는 나를 비방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시험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이유는 그들이 가진 <편견, 유전, 고집, 아집 등>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교회, 그리고 성도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할례자들” 이 <베드로를 비난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이 할례자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할례는 유대인이면 누구나 받았기에,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유대인 모두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할례자들”이 누구인지 알려면 사도행전 6:7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초대교회가 평신도지도자 일곱 명을 선출해서 사역을 나눴을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는 바리새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유대교에서도 아주 골수분자들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무서울 만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 “할례파”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할례의 중요성을 집요하게 강조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할례파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교회에 들어와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며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그들을 비난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5 에도 보면 할례파에 대해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자, 이제 할례파에 대해 이해가 가시지요?

그들이 지금 베드로를 비난하는데 뭘 가지고 비난합니까?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먹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유대인이 이방인에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죄가 될까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다 뒤져 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할례파 사람들은 왜 베드로를 비난했을까요?

그들은 <유전(遺傳)>에 근거해서 비난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법을 자신들의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법 때문입니다. 말씀에도 없는 법을 인간이 만들어 놓고, 그 법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할례파가 베드로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판단하고, 목회자를 판단하고, 다른 신앙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인지> 아니면 <나의 경험, 혹은 부모로 부터 받은 유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힘들게 하는 세력은 절대로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사람들이 힘들게 합니다.

한 교회에 30-40년 다녔는데 하면서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어!>하면서 역사로 사람을 평가하고, 내가 교회에 직분이 중직자인데 하면서 <직분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는 묵은 교인들 때문에 힘들고, 직분 있다는 자들 때문에 힘듭니다. 그들은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엉뚱한 다른 것으로 판단기준을 삼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가 보십시다.

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할례 자들의 비난을 받은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고, 음식을 함께 먹은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위대성을 또 한 번 발견합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 천국열쇠를 받은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수장입니다.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를 1대 교황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교황의 파워 와 권위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의 능력과 권위는 대단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로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회개했습니다.

그의 선포로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중풍병자 애니아가 고침 받았고, 죽은 다비다도 살아났습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자,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정도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향해 비난하는 할례자들을 <무지하다고 나무랄 수도 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변론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의 권위로 그들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4절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라고 합니다. 차근차근 그들에게 그 동안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이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습니다. 그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인내하고, 친절하고, 온유함>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만 하면 교회는 시끄러울 일도 없고, 교인 중에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4-16절까지가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5-10절까지로 베드로가 본 환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정오에 기도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보자기 같은 그릇이 자기 앞에 내려 왔는데 그 안에는 불결한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을 잡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8절에 있는 대로 “...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며 자신도 처음에는 할례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동료 사도들과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신앙적 혼돈을 자신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반항했다는 예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하늘로부터 또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이런 말이 세 번 있었다고 그가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본 환상이야기는 이미 생각했습니다만, 베드로만큼 반항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 번이나 <잡아먹어라.> 하는데도 하나님께 세 번이나 <NO>하면서 거절한 인물입니다. 똥배짱도 이런 배짱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거부한 인물입니다.

그런 자신을 향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내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둘째는, 11-16절까지로, 고넬료가 보낸 종을 만난 일과, 그 순간 성령님께서

지시하신 일, 그 후에 고넬료의 집에 가서 일어났던 일들을 요약해서 설명합니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말씀은 12절입니다.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이 여섯 형제>라는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섯 형제는 가이사랴에서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과, 욥바에서 부터 베드로와 동행한 세 사람을 말합니다.

이 여섯 명은 욥바에서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집에 성령강림의 역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지금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도 함께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 가정의 성령강림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목격한 사람이 이들 여섯 명과 함께 + 베드로 = 총 7명이라는 말입니다. 7명은 굉장히 중요한 숫자입니다.

당시 로마 통용 법에 의하면, 일반적인 법정에 증인으로 나갈 때는 두 사람이면 됩니다. 하지만 증인의 수가 7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 <완전무결한 진실로 인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넬료의 가정의 성령강림사건, 즉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성령세례가 임하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한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설명한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는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했다”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륜도 중요하고, 경험도 중요하고, 전통도 중요하고, 직분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위에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서는 누구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이제 남은 마지막 한 절을 보십시다.

베드로사도의 아름다운 선교역사를 들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유전에서 벗어나지 못해 베드로를 비난했던 <할례자>들에게 베드로사도가 차근차근 설명을 하자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18절 함께 읽어보십시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8절은 두 부분으로 나눠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라는 말입니다.

할례자들은 베드로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잠잠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과 역사 앞에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많아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쓸데없는 편견 때문에, 부정적인 비판의식 때문에, 나름 지성이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보면서 잠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례자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 앞에 먼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사건을 곱씹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반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주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물어 주셨다>는 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평하고, 비난하고, 틀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더 큰 하나님,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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