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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3월 20일
마가복음 15:16-41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오늘은 그림 하나를 보면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십자가 위의 바보>란 제목의 그림 입니다. 이 그림은 종이 위에 그린 것이 아니고, 누구인지 모르지만 벽을 긁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것을 ‘그라피토’(graffito)라고 하는데 이탈리아어로서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 흙으로 지은 집이나 혹은 담에다 못이나 나무를 이용해서 그렸는데 바로 그런 그림을 말합니다.

그림 가운데 상단에는 나귀 머리를 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 편에는 다른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알렉사메노스가 신을 경배한다.”입니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모릅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그렸다고 보기 힘듭니다. 어른들이 남의 집 벽이나 담에 이렇게 그렸겠습니까? 분명 장난기가 많은 아이들이나, 노예 중에 어떤 사람이 그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예수를 믿었던 “알렉사메노스”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 “알렉사메노스가 신을 경배한다.”고 조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후 1세기 유대인들에게나, 로마치하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신이라고 믿느냐? 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그 시대 상황으로 보면 옳았습니다.
당시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스라엘도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인 억압에서 풀어줄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방식은 사람들에 따라 달랐습니다.
열심당은 - 칼을 차고 혁명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두개파는 - 로마의 정권과 타협해서 나라의 안정을 가져오기를 원했습니다.
바리새파는 - 엄격한 문화적, 종교적 구별된 삶을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에세네파는 - 더럽고 추한 세상을 떠나 쿰란에 가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 메시아 왕국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길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적을 멸망시키는 대신 사랑으로
보복하는 대신 무조건적인 용서로
힘을 사용하는 대신 기꺼이 고난 받음으로 /
미움과 복수를 찬양하는 대신 화평케 하는 자를 축복하는 길” 선택해서 오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오신 길은 <사랑의 길이었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창조자이십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죽으시려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같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 낼 수 없듯이), 죄로 인해서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진 상식으로는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당연 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십자가에서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하게 꿰뚫은 자가 내린 정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반대로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십자가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다른 그 어떤 말씀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어서 오늘 설교제목을 십자가의 길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라틴어로 ‘고난의 길’, 또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을 기념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이름 붙여진 순례의 길입니다. 현재 예루살렘 구 도시 안에 위치해 있고, 거리는 600m 정도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신 길이 60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다면 보통 성도님들은 깜짝 놀랍니다. ‘십자가의 길이 한 20km 정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짧아요!,’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입장에서 내려가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심문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그리고 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동하신 것을 생각하면 그 길이 짧은 길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 그럼 주보에 넣어드린 <참고자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중심해서 말씀드리고 일부는 부연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참고자료에 보면 상당에 본문과 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14 Station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14번 멈추신 곳을 말합니다. 그 아래는 약도가 나옵니다. 우측 편 1번에서 좌측으로 가면 14번까지 나오지요... 그 순서대로 한 번 가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네모 박스 도표는 구체적으로 14개 처를 기록해 놓았고, 그 유적지를 현재 누가 관리하는 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럼 14개 처소를 하나씩 생각해 보십시다.

1처 <사형판결> / 로마의 프레토리움 법정에서 빌라도가 사형판결을 내림
/ 선고교회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마가복음 15:1-5 말씀이, 빌라도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처 <채찍질> / 브라이도리온 관정에서 군별(군인)들이 채찍질하고 희롱함
/ 채찍질교회, 십자가 교회
근거 구절(마 26:19-26 / 요 19:1-3)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는 십자가에 못을 박기 전에 먼저 매질을 하였습니다. 이유는 십자가에서 서서히 죽이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당일에 죄수를 빨리 죽게 하기 위함인데 그 이유는 율법 때문입니다.
신명기 21:22-23 에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채찍질 한 것입니다.

이미 BC 1400년경에 예수의 죽음을 대비하여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자로 채찍질 당하고 나무에 달
려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플래그럼(Flagrum)이라고 알려진 도구를 이용해 매질을 당했습니다. 채찍 끝에 날카로운 돌이나 양뼈 조각 등을 박은 가죽 끈 서너 가닥을 묶어 만들었습니다.

채찍질 당한 예수님은 골고다(아람어 해골이 있는 장소)로 십자가를 운반하도록 했습니다. 나무가 귀했던 이 지역에서 나무 십자가 하나의 가격이 매우 비쌌다는 것을 감안하면 십자가의 수직 기둥은 영구적으로 세워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죄수들이 지고 간 가로목 하나 무게가 34kg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밤새 심문을 받고 채찍질당하고 기력이 쇠해진 상태에 있었기에 그 십자가를 지고 가기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3처 <넘어지신 곳> / 예수님이 처음으로 이곳에 쓰러지셨다
/ 아르메니아 가톨릭 채플

4처 <어머니와 만난 곳> / 십자가를 다시 지고 가시다가 이 자리에서 어머니를 보시고 잠깐 멈추신 곳이다. / 아르메니아 정교회
(어머니 마리아와 만났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5처 <구레네 시몬> /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우다 / 로마 가톨릭교회
근거구절 : 오늘 본문 중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 15:21)

6처 <베로니카를 만난 곳> / 예수님의 여동생(?)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다. 이 수건은 로마 베드로 성당에 보관되다가 교황 요한 5세가 그림으로 남긴 후 치우라고 한 뒤 행방불명됨 / 그리스 베로니카 정교회

베로니카를 예수님의 여동생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전승에 의하면 12년 동안 앓던 혈루 증을 고침 받은 여인의 이름이 베로니카라고 하기도 합니다.

7처 <두 번째 넘어지신 곳> / 예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신 곳이다. 구레네
시몬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아닌 것 같다. / 가톨릭 채플

8처 <이스라엘 딸 위로>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눅 23:27-28) / 희랍 정교회 수도원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을 보고 슬퍼하는 여인을 보면서, 오히려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의 참상을 미리 내다보며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려 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9처 <세 번째 넘어지신 곳> / 골고다 언덕에 거의 다 올라와서 세 번째로 넘어 지신 곳 / 이집트 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10처 <예수님의 옷을 벗기다> / 이곳에서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을 준비를 한다. 무덤의 소유주는 무슬림이다 / 무덤교회. 박탈교회 (박탈교회는 부활교회로 보시면 됩니다.)

10처부터 14처까지는 성묘교회 안에 있습니다.
성묘교회는 여러 종파(가톨릭,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틱교회, 에티오피아 교회)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다 보니 오랜 세월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11처 <십자가에 달리신 곳> / 해골(갈보리)이라는 곳에 이르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눅 23:33) / 무덤교회

예수가 다른 두 명의 죄수와 함께 골고다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 경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십자가 처형 절차를 훈련받은 로마의 특기병에게 예수를 인계되었고, 그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바닥에 쓰러뜨린 뒤 두 팔을 벌려 십자가의 가로 목에 대게 했다 몇 명의 건장한 병사가 예수를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두 명이 헤나로 만든 끈으로 팔을 가로 목에 묶었다. 이 끈은 예수의 피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예수의 팔과 손이 고정되자 계급이 높은 병사가 묵직한 나무망치와 11.43cm 길이의 못을 가지고 와 옆에 쭈그려 앉아 못 박을 장소를 찾았다
십자가형에 대한 구전과는 달리 못은 손바닥을 관통하지는 않았다. 사람 손바닥은 약해서 성인의 몸무게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손목 바로 아래 요골과 척골 사이 지점을 찾은 병사는 온 힘을 다해 망치를 휘둘러 못을 박았다


12처 <돌아가신 곳> / 3시간 동안 온 세상이 어둠이 임하고 지진이 일어났다
/ 무덤교회 희랍정교회

11처와 같은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속죄를 위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흠 없는 희생양처럼 순종하시고 이곳에서 죽으셨습니다.

13처 <입관> /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서 입관한 장소다 / 무덤 교회
성묘교회 들어가면 정면 현관에 바닥에 닳아서 윤이 나는 붉은색 대리석 하나가 깔려 있습니다. 이 대리석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이곳에 눕히고 향유를 바르며 염한 장소인 것입니다.

14처 <무덤> / 예수님의 무덤이 있던 장소 / 무덤교회
(묵상구절 : 마태복음 27:59-61)
이 무덤에 주님은 금요일 밤부터 주일 새벽까지 계셨고, 부활 주일 새벽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덤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자, 우리는 날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가신 그 고난의 길을 한 번 따라 가 보았습니다. 그 힘든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서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감격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십자가의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24 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제 마지막으로 동영상 하나를 보면서, “나도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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