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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_-uRcKTt9_c
본문 사도행전 17:10-1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4-08

사도행전 17:10-15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지난 두 주일은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이었기에 절기설교를 했고, 오늘 다시 사도행전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그동안 생각한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다.

빌립보(3가지 사건) –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 전도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고쳤다고 매 맞고 감옥에 갇힘

감옥에서 일어난 기적으로 인해 간수의 가정 전도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 회당이 없어서 그냥 지나옴

데살로니가 – 짧은 기간 전도했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기록에 의하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 의 인내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었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그 들의 믿음이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교회도 지금 좋은 소문이 나고 있지만 더 좋은 교회 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억이 나시지요? 오늘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의 핍박으로 베뢰아로 옮긴 바울의 사역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피기 전에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적 이미지 지우기>입니다.

저를 포함한 모태신앙이나, 신앙생활을 하신지 수 십 년 되신 분들의 머릿속에는 <베뢰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입니까?

<베뢰아?> 하는 순간 -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 귀신론? 하며 <이단>이란 생각을 먼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뢰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끗하게 지우시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자, 그럼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줄 믿고 10절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사도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의 핍박으로 데살로니가에서 밤에 나와,

데살로니가 서쪽 66km에 있는 베뢰아로 왔습니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다른 곳에서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태도를 11절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 말씀은 중요한 말씀이기에 다른 성경에는 어떻게 번역했는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새번역>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 고하였다.”

<킹제임스 성경>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상(高尙)하여서

완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므로”

 

뭔가? 여러분에게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까?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인데 베뢰아 성도들과 비교했을 때, 잘 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못한 것 같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말씀을 만약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보았다면 기분이 어떠했을까? 좋았을까? 아니면 나빴을까? 아니면 우리도 더 분발해야지? 하면서 자극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지금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데살로니가 교인과 vs 베뢰아에 있는 교인>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절대로 금해야 할 덕목 중에 하나가 <비교의식>입니다. 누가 누구를 비교하는 순간 두 사람 모두 병에 걸립니다. 비교해서 자신이 우월하면 <교만하게 되고>, 비교해서 자신이 열등하면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누가는 두 교회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 이 두 교회를 비교하려면 두 교회를 다 경험해 본 자라야 합니다. 두 교회를 다 경험해 보고 나서 이 교회에 비해 이 교회가 더 말씀을 잘 듣는구나!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설교요청을 받아서 다른 교회에 가서 헌신예배 설교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갈 때마다 그 교회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입구부터 따듯하고 평안함을 느끼고, 설교 시간에도 말씀이 성도들에게 쫙쫙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오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은혜가 되고 성도들도 은혜가 됩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에 가면 교회가 차갑게 느껴집니다. 예배실안이 썰렁하게 느껴지고,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에게 받아들이지 않고 탁구공처럼 튕겨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힘들고 그 교회도 힘듭니다.

 

그런 것을 교회의 영적 분위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외부강사님들이 와서 자신의 느낌을 말씀하실 때, 따뜻하다, 밝다, 은혜롭다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 느낌이 목사한 사람의 생각도 되지만, 우리교회 처음 나오는 새 가족의 느낌도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우리교회가 <성령 충만한 느낌, 따뜻한 느낌, 은혜 충만한 느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누가는 데살로니가교회와 베뢰아 교회를 비교하고 <베뢰아 교회>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 표현이 “더”라는 말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여러분! 제가 설교 서두에 데살로니가교회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만큼 좋은 교회가 없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짧은 기간 말씀을 받았지만, 성도들의 신앙은 그들의 마음과 삶에 열매가 맺혀졌습니다. 그 표현을 간단하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소개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지방으로 소문났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인보다 베뢰아 교인들이 더> 훌륭해! 하면서 베레아교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에 궁금증이 생겨야 합니다. <아니 도대체 베뢰아 교인들의 신앙의 태도가 어떠했기에 그들의 손을 누가가 들어주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십시다.

11절을 다시 함께 읽어보고 살펴보십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첫째, 이 말씀에서, “너그러워서”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전에 성경에서는 “신사적이어서”라고 했었습니다.

<너그럽다, 신사적이다>라는 말은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헬라어 ‘유게네스테로이’ 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바울과 누가만 몇 번 사용한 특별한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2절에 “어떤 귀인이”라고 번역했고,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는 “문벌 좋은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뜻은 ‘가문이 좋은’, ‘출신이 좋은’, ‘고귀한’ 등의 의미로 <출생 적으로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고상하게 태어난 귀족적 신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너그러워서>의 의미를 7가지로 정리했습니다.

① 태생적으로, 천성적으로 심성이 좋다.

②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별로 열등의식이 없다.

③ 편견이 없다.

④ 불순한 동기가 덜 작용하는 사람이다.

⑤ 감정에 매이지 않는다.

⑥ 즉흥적이지 않다.

⑦ 수동적이지 않다.

이렇게 일곱 가지 특징을 하나씩 깊이 생각하면 <너그러워서>라는 말의 의미가 그렇게 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다면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 중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뢰아 교인들의 마음 밭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베뢰아 교인들의 신앙태도

둘째,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11절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라는 말씀을 보는 순간, 베다니에 살았던 <마리아>가 생각났습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었던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 가정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베다니에 살던 이 삼남매의 가정에 들려서 식사대접을 받았고, 주무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마르다는 언니답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음식 준비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생 마리아는 언니를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합니다.

마르다의 접대, 마리아의 말씀 경청 둘 다 중요한데,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선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은 – 그 말씀을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설교를 하고 여러분은 설교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에게 최고의 대접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신이 나서 설교를 할 것이고, 다음 주일에도 더 말씀을 잘 준비해서 설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설교를 들으면서 눈동자는 희미해지고 눈꺼풀은 자꾸 아래로 내려오고 / 입에는 하품이 나오고 / 언제 마치냐? 하면서 시계를 보고 / 중요한 말씀은 메모도 했으면 싶은데 전혀 미동도하지 않는다면> 저는 실망할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 설교를 듣는데, 열심히 준비하면 뭣하겠냐? 대충 설교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참고로 <설교를 듣는 4가지 유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지 찾아보세요.

첫째, 모래시계 형 – 사우나에 가면 모래시계가 있지 않습니까? 모래가 들어가 있는 쪽을 위로 해 놓으면 아래로 모두 빠져나갑니다. 그렇듯이 설교를 듣기는 듣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다 흘려보내고 마는 성도입니다.

 

둘째, 스펀지 형 - 스펀지는 잡았다 싶어 다시 놓으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듯이 이런 유형은 말씀을 받을듯하면서 받지 않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유형입니다.

 

셋째, 체 형 -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시골에 가면 아직도 체가 있습니다. 체에다 곡식을 놓고 흔들면 알곡은 다 내려가고 마지막에는 껍질만 남게 됩니다. 그렇듯이,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좋은 말씀은 다 잊어버리고 꼭 나쁜 것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입니다.

 

넷째, 정미기 형(그림 5) - 정기기는 어떻습니까? 벼를 수학해서 정미기에 벼를 넣으면 잘 정리해서 쭉정이와 겨는 다 내보내고 마지막에는 깨끗한 알곡만 자루에 담깁니다. 그렇듯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늘 종은 말씀, 은혜로운 말씀만 남는 성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입니까?

 

우리 정동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정미기 형>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베뢰아 성도들처럼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뢰아 교인들의 신앙태도

셋째,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11절 하반 절에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 말씀은 금년 전교인 성경읽기와 500독을 목표로 하는 우리들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베뢰아 교인들은 회당에서 바울로 통해서 복음을 들은 후에 말씀을 보는데 <날마다,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도 매주일 마다 성경을 1독하시는 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벌써 53독을 했습니다. 실명을 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성복기 성도님>같은 분은 벌써 6독을 했습니다. 병원생활을 하시고 계시는데, 얼마나 열심인 줄 모릅니다.

반대로 전교인 성경일기를 한다고 해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루에 성경 한 장을 못 읽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분발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특별히 눈에 뛰는 것은 베뢰아 교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성경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 말씀을 내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상고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가 맞게 하나? 틀리게 하나? 하며 부정적인 의미로 확인하기 위해서 상고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설교가 말씀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긍정적인 면으로 상고하면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도 배워야 할 신앙태도입니다.

 

자, 정리해 보십시다.

베뢰아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너그러운 사람이었고 + 거기에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받은 말씀이 성경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매일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성도만 된다면 그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을 것입니다.

 

자, 그럼 베뢰아의 선교 결과를 보십시다.

좋은 결과는 12절에 나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유대사람, 헬라 사람, 남자, 여자> 구별하지 않고 놀라운 선교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로마서 1: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는 자를 붙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사랑전도대의 경우도 보면 힘들어도 전도하려고 나갔을 때 나갈 때마다 귀한 영혼을 붙여주셨습니다. 벌써 두 분 등록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도, 전도대원들도 복음의 야성을 회복하셔서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나쁜 결과 13-15절에 나옵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베뢰아의 선교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자, 데살로니가에서 박해했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바울의 선교를 박해합니다. 일명 <원정 박해단>입니다.

사실 원정박해단 원조는 바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아들이려고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 왔었지 않습니까? 그런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데 과거 자신과 같은 짓을 하는 원정박해단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기고, 자신만 조용히 아덴으로 또 선교지를 옮깁니다. 아덴에서의 선교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교회 교인과 비교해서 더 칭찬을 받았던 베뢰아 교회 교인의 신앙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으셔서, 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서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주변의 교회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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